김영재 해금작품집 1
1. 적념(寂念)
해금 : 김영재
<김영재 해금작품집 1>의 음반 해설지에 있는 글을 순서대로 모두 올렸습니다. 직접 두 손가락으로 쳐서 올렸고(제가 아직 두 손가락으로 타자를 칩니다) 모두 확인을 하였으나 오타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삶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음악작품 - 김영재교수의 해금작품집에 붙이는 글
음악학박사 송방송(영남대 음대 교수,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1. 작곡자의 작품배경과 음악세계
이 땅에서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음악지성들은 어느 시대의 음악인들보다도 막중한 시대적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현대사를 거치는 동안 우리민족의 음악지성들에게 부과된 역사적 과제가 현재의 음악인들에게 고스란히 그대로 전승되어 내려오기 때문이다. 지금 이 땅의 음악지성들에게 부괴된 역사적 과제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인 바, 그 하나가 전통음악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과제이고, 다른 하나는 서양음악의 자주적 수용이라는 과제가 그것이다.
한국근현대음악사의 이러한 시대적 과제에 대하여 올바르게 자각하여 각성하고 있는음악지성을 우리는 역사의식에 투철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우리 민족음악사의 이런 시대적 과제를 가슴 속 깊이 품고서 묵묵히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작곡가이자 연주자이면서 교수의 직분을 지닌 중견의 음악지성이 있으니, 그가 바로 어느 누구보다도 역사의식에 투철한 김영재교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곧 살펴볼 그의 해금작품집이 그의 역사의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실증물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제 민족음악사적 관점에서 보아 그가 과연 어떠한 위치에 놓여있는지를 좀더 구체적으로 거론해보기로 하련다.
국악예술학교에서의 6년이라는 교육과정(1961-67년)을 거치는 동안에 다져진 그의 음악적 배경은 한국근현대민족음악사에서 부과된 전통음악의 창조적 계승을 위한 음악활동의 밑거름이 되고있다. 고 지영희(1909-1908)명인에게서 배운 해금, 고 신쾌동(1909-1978) 명인의 거문고,고 성금련 명인의 가야금,고 한영숙 명인의 무용과 같은 전통악무는 오늘의 그가 앞으로 전개 시킬 음악적 잠재능력의 뿌리 노릇을 하리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무용을 위한 창작곡 "그날이 오면" 외 10여편,연극을 위한 창작곡 "심청전" 외 10여편, 그리고 성악 및 기악을 위한 창작곡 "비" 등100여곡, 또한 현재 그가 무형문화재 제16호 신쾌동류 거문고산조 보유자후보로 지정된 사실도 모두 이러한 교육배경의 산물이라고 하겠다.
서라벌예대와 경희대 및 동 대학원 작곡과(1971-1980)에서 갈고 닦은 그의 교육배경은 한국근현대민족음악사에서 부과된 서양음악의 자주적 수용을 위한 든든한 터전이 되고 있다. 한국양악의 원로 작곡가 김동진선생님과 김세형선생님에게서 서양음악의 작곡기법 사사했으니, 한국의 전통악기를 풀륫이나 피아노 또는 기타 등과 같은 서양악기와 함꼐 연주하도록 시도해온 그의 작곡경향이 우연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바이다. 그리고 그가 KBS국악대상(1989) 중 작곡상을 수상하게 된 내력도 알고 보면 이러한 대학교육의 배경에서 나온 당연한 결과의 하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의 이와 같은 교육배경을 살펴보면, 그를 연주자이면서 작곡가라고 부를 수 있는 음악지성의 한 사람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연주자이자 작곡자로 전통음악분야에서 현재에도 활동하는 음악지성으로 김영재 이외에 여러 사람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연주와 작곡이라는 음악활동에 대하여 그가 보여준 성실하고 진지한 삶의 태도가 그의 해금작품 속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다. 김영재다운 삶의 냄새가 그대로 물씬 풍기는 해금작품이 나오게 된 숨은 내력의 일부를 소개하면 대략 이러하다.
그가 필자에게 밝힌 그의 생활철학은 대체로 두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하나는 연주자로서의 활동과 관력된 삶의 태도이고,다른 하나는 작곡자로서의 활동에 대한것이다. 첫째로 무대에 서는 것이 늘 두려워 하나라도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기 때문에,새벽에 일어나자 마자 악기연습을 하지 않고서는 하루의 일과를 시작할 수 없다는 고백에 주목해야 하겠다.
▲ 김영재 교수는 해금의 명인이면서 거문고나 가야금에도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
둘째로 그는 작곡하게에 앞서서 언제나 악기로 악상의 연주가능성과 음향효과 등을 여로모로 실험하고 녹음해서 들어보고 또 남에게 녹음을 들려주고 나서 자신의 확신이 섯을 때 비로서 그 악상을 바탕으로 오선지 위에 적어 나가기 시작한다는 작곡자로서의 성실한 노력에 뿌리를 둔 생활태도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의 솔직한 고백과 끊임없이 노력하는 생활태도가 우리나라의 연주분야 및 창잔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음악지성들에게 깊은 의미르 암시해주거나 함축해주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올해 연초 전국적익 음대입시부정과 최근 가짜 양악기파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학국 악단의 딱한 실정을 제회시키더라도, 현재의 음악지성들은 성실한 작곡가 와 연주가들만이라도 허위의식에서 하루 빨리 해방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사실 오선보에 그려넣은 선율을 악기로 연주할 수 없는 유명한 작곡가가 있는가 하면, 창작곡을 제대로 해석하여 연주할 수 없는 저명한 교수가 연주가의 타이틀을 가지고 다니는 현실이고 보면, 김교수의 성실한 음악세계와 관련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또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전통음악의 창조적 계승이나 서양음악의 자주적 수용이라는 우리 민족음악사적 과제를 염두에 두고, 어떻게 작곡할 것인가라는 작곡문제,또한 새로 창작된 음악작품을 어떻게 연주할것인가의 해석문제는 현재의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까닭에서이다. 또한 현행 대학교의 국악과에서`서양음악의 화성법과 대위법은 아직까지도 작곡 공부의 바탕이 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흔히 잽이 출신이라고 하는 작곡가 중의 한 사람이 김영재교수의 작품활동은 앞으로 우리나라 작곡계에서 결코 과소 평가되지 않을 것이라고 필자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악단에 만연된 허위의식을 빨리 벗어버리도록 이끌어주는 좋은 본보기의 하나가 바로 그의 성실한 삶을 그대로 반영시킨 해금작품집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2. 해금산조와 해금을 위한 새 창작품
해금이라는 현악기는 <악학궤범> 권7에 의하면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이었던 호족(胡族) 중에서 해(奚)라는 부족이 즐겨 연주했던 악기라고 설명되어 있다.
연주자의 왼손 손가락으로 해금의 두 줄을 잡고서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오른손의 활로 줄을 문질러 묘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 김영재교수의 연주기량은 오랜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쌓은 노력의 결정이라고 보아야 옳다. 그의 앞 세대가 남겨준 연주기법은 대체로 해금산조에서 드러났다고 보아도 좋을 듯 싶다. 그러나 앞 세대의 해금연주법을 바탕으로 그가 어떻게 새로운 연주기법을 발전시켰는지를 그의 해금창작곡집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해금산조와 창작곡의 내력을 하나씩 차례로 살펴보도록 하련다
1. 적념(寂念)
1989년 김영재 교수의 작곡인 해금 선율에 이병욱 교수가 기타와의 2중주곡으로 편곡한 이 창작곡은 악곡명이 암시하듯이 쓸쓸하고 외로움을 표현한 주제 선율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주제 선율의 연주에 이어서, 양악풍의 기타 선율이 계속된 다음, 중모리 장단의 남도 계면조에 의한 가락이 연주되고나서, 자진모리 장단의 카덴잔에서는 해금과 기타가 대화 형식으로 서로 주고 받다가, 단모리 장단의 빠른 가락으로 발전시킨 후에, 다시 주제 선율로 되돌아가면서 곡을 마친다.
빠른 도섭 대목에서 자유 리듬으로 연주되는 해금 가락과 대조적으로 기타의 몸통을 두드려 리듬의 효과를 연주한 음악 효과가 청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동양의 대표적인 찰현악기인 해금과 서양의 대표적인 발현악기인 기타가 서로 잘 어우러지는 2중주가 서양악기의 자주적인 수용이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점이다.
1. 적념(寂念)
2. 비(悲)
영남·호남·서도 지방의 민속음악 중에서 슬픈가락을 뽑아서 엇모리 장단에 맞추어 1980년에 작곡한 이 해금독주곡은 대채로 슬프고 한스러운 느낌을 주는 곡이다. 무장단의 도입부에서 경상도 메나리조의 가락을 즉흥적으로 연주하는데, 이 즉흥연주곡은 마치 인도 라가(Raga) 의 본바탕 연주에 앞선 무장단의 즉흥전주곡 곧 알랖(Alap) 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들어준다. 메나리가락의 즉흥연주에 잇대어서 남도계면조의 슬픈가락으로 이어지게 되고, 다시 메나리조의 주제로 되돌아갔다가, 서도지방의 수심가조의 애뜻한 가락으로 연주한 후에, 무장단의 애련한 주제선율로 곡을 맺는다. 그가 창작한 주제선율로 도입부에서 직접 즉흥적으로 연주해내는 연주기량 및 주제선율을 여러번 전조시킴으로써 음악적인 변화를 추구한 작곡기법은 매우 인상적이다.
2. 비(悲)
3. 아리랑 연곡(連曲)
우리나라 전국의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 가락을 장고 반주에 맞추어 해금곡으로 편곡한 창작품, 구아리랑, 신아리랑, 긴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 강원도아리랑, 진도아리랑 이상의 일곱곡이 연속적으로 연주된 이 창작곡에서 김영재는 고 지영희 선생님에게서 배운 해금 연주법과 그 자신이 민요 반주에서 얻은 경험에 의한 다양한 해금 농현을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3. 아리랑 연곡(連曲)
4. 해금산조(奚琴散調)
김영재 교수의 해금 산조는 고 지영희(1909~1980)명인에게서 물려 받은 것인데 다른 산조에 비해서 이런 음악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중중모리와 자진모리 사이에 엇모리가 들어가는 대신에 굿거리와 자진굿거리가 삽입되었다는 사실인데, 지영희류 해금 산조의 특징은 경기도와 충청도의 장단 구조에 바탕을 둔 산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연주한 해금 산조 한바탕은 따라서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굿거리, 자진굿거리, 자진모리, 푸는 가락으로 구성되었다. 해금 가락에 사용된 묘한 여러 꾸밈음은 그의 연주 기량을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 전체적으로 계면조의 슬픈 가락보다도 평조와 우조의 명쾌하고 화사한 가락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경기 지방의 굿음악과 해금 명인 지영희 선생님으로부터 그는 앞 세대의 연주 기법을 고스란히 전승 받았음을 이번 산조 연주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4. 해금산조(奚琴散調)
5. 조명곡(鳥鳴曲)
이 해금독주곡은 김영재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전남대의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묘사해서 1985년에 작곡한 작품인데, 이 독주곡에서 작곡자는 산조형식 중 자진모리를 사용했지만, 선율은 현대식 감각으로 창작한 것이라고 한다. 무반주의 독주로 새소리를 모방해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도입부분은 인도의 라가연주에서 보여주는 알랖을 듣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전주곡의 인상이다.
남도계면조의 가락에 얹은 서정적인 자연묘사로 시작되는 도입부에 이어서, 새들의 지저귐을 해금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해금의 묘한 소리는 그의 연주기량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어 주고있다. 해금의 묘한 소리는 패시지(Passage) 의 응용 및 스타카토(Staccato) 의 활용, 그리고 최고음과 최저음의 활용과 같은 난해한 해금연주법에서 그의 연주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창작품이기도 하다.
5. 조명곡(鳥鳴曲)
6. 팔도민요연곡(八道民謠連曲)
우리나라 팔도의 대표적인 민요를 장구반주에 맞추어 편곡한 해금곡을 기타와 함께 연주하도록 재편곡한 창작곡. 평안도의 긴아리, 황해도의 산염불, 경기도의 양산도, 충청도의 천안삼거리, 강원도의 한오백년, 함경도의 신고산타령, 제주도의 둥그레당실, 경상도의 밀양아리랑, 전라도의 진도아리랑이 해금으로 연주되었고, 기타가 반주를 담당하였다.
팔도와 제주도의 대표적인 민요에 담긴 선율의 특징을 찰현악기로 적절하게 표현한 해금연주가 성악곡으로만 감상허던 청중들에게 음악적인 신선감을 주기 때문에, 그의 훌륭한 연주기량을 한층 돋보이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6. 팔도민요연곡(八道民謠連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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