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

한국종교의 내세관

눈자라기 2009. 3. 10. 10:35

한국 종교에서의 내세관

 

(1) 불교

불교에서는 극락정토(極樂淨土)와 지옥의 두 가지 형태의 내세관 을 말하며, 망인(亡人)의 영혼이 일단 죽어서 명부(冥府)로 가서 명부의 십대왕(十大王 )앞을 차례로 거처가며 현세에서 행한 생전의 선악에 따라 심판을 받아 지선자(至善者)는 극락으로 보냄을 받아 왕생하여 영생을 누리게 하고, 악행자는 지옥으로 보내어 영원히 온갖 형벌을 받게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불교의 내세관에서는 윤회설(輪廻設)을 주장한다. 이것은 기원전 600년 경의 우파니샤드의 문헌아래 인도 일반에 설(設)해져 온 것인데 불교도 역시 이 영향을 입은 것이다. 윤회라는 말은 범어(梵語)인 삼사라(samsara)의 역어(譯語)로 전생(轉生), 재생(再生), 유전(流轉)이라고도 말한다. 윤회라는 것은 생명이 있는 것(衆生)은 죽어도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또 바뀌어 태어나, 마치 수레바퀴가 회전하여 멎지 않는 것처럼 생(生)을 끊임없이 되풀이 한다는 사상이다. 또 불교에서는 윤회하는 세계에 삼계(三界) 육도(六道)가 있다고 말한다. ▿ 윤회사상(輪廻思想)에 의하면 현재 우리 앞에 있는 짐승들이 전세(前世)에서 사람이었던 것이 바뀌어 태어 났을 수도 있고, 미래세(未來世)에 인간이 짐승으로 태어나는 일도 있을 것으로 본다. 육도의 어느 세계에 태어나는가 하는 것은 행위의 총체인 업(業)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다. 선한 행위를 한 선업(善業)에 의하여 선의 세계에,악한 행위를 한 악업(惡業)에 의하여 악의 세계에 태어난다고 한다.

 

(2) 도가

도가사상에 있어서는 ‘도’를 가장 핵심적인 개념으로 생각하였고 이 ‘도’를 영구불변의 우주의 본체로 보고 만물이 여기서 나왔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도’는 인격성 없는 추상적인 자연 법칙을 의미하는데 지나지 않았다. 도가사상가(道家思想家)들은 자연의 위대한 법칙을 발견하고 이에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될것을 생각했지만 이러한 자연법칙을 주관하는 그 이상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도가사상에 있어서는 생을 비관적으로 보는 경향을 가짐과 동시에 죽음에 대하여는 상당히 초연하고 담담한 태도를 취한다. 자연에 춘하추동이 있듯이 죽음도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도래(到來)하는 것처럼 사는 것과 죽는 것도 일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도가사상에는 사후세계(死後世界)에 대하여 구체적인 확신도 없고, 소망도 볼 수 없다. 다만 조상숭배 의식과 깊이 관련된 신앙에서 내세관에 언급된 것을 보면, 사람이 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주적인 세력과 화합을 이루어야 하며, 죽은 자의 무덤도 산세(山勢)의 흐름이 음양의 이치와 잘 맞아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 조화가 이루어 지지 않으면 고인의 운명이 불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풍수설(風水說)이다. 이와 같은 신앙사상으로 모든 사물을 정통한 사람은 지관(地官)으로서 무덤의 방향과 위치에 대하여 자문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히 비 성경적이다. 왜냐하면 고인(故人)의 운명은 무덤의 위치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도교(道敎)의 우주론은 성경의 창조 교리와는 반대되기 때문이다.

 

(3) 유교

본래 공자는 영혼 불멸에 대해서나 사후 세계에 대하여 별로 가르친 바가 없다. 그런데 시간이 감에 따라 유교 전통이 일반 토속신앙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점 하나의 종교적인 요소를 포함하게 된 것이다. ▿가의 내세관 다시 말하면 사자의 세계관은 송대(宋代)이후의 신유학(新儒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송대의 대유학인 주자철학(朱子哲學)은 소위 성리학(性理學).도학(道學).송학(宋學)으로서, 특히 주돈이의 태극도설과 정이의 이기설(理氣說)을 종합한 것인데, 이기(理氣), 심성(心性)을 탐구함으로써 세계와 인생을 해명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는 고려말경에 안유(安裕)가 연경(燕京)에 갔다가 수입해 온 후로 점차로 진흥하여 이조 국가 건설의 지도적 이념이 되었으며,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원용(援用)그리고 가묘(家廟)의 설립 등으로 점차 민중생활 속에까지 깊이 뿌리를 박으면서 이조 사회에 공과(功過)양면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리하여 조선시대에서는 음양설에 의한 귀신론과 사후 세계관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유가의 음양설에 의하면 천지간에 만물에는 기(氣)가 있는데 기는 정령을 의미하며, 양기의 정령을 혼기(魂氣)로, 음기의 정령을 형백(形魄)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이 죽으면, 음의 정령인 형백은 처음부터 지하에 묻히지만, 양의 정령인 혼기는 승천하여 신명(神明)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생전에 원한이 맺혔거나 현세에 대한 미련을 남기는 경우라든가 죽음의 형태가 비참하다든가 또는 객사(客死)하였을 적에는 양의 기가 승천되지 못하고 강하(降下)하여 귀신이 되어 공간에 부유(浮遊)하며 떠돌아 다니는데 이것이 소위 귀신이며, 생존한 가족에게 나타나 괴롭히며 조화(造化)를 부린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유학계의 대학자인 이율곡(李栗谷)도 이러한 종교적 신앙을 근거로 조상숭배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선후기 실학의 거▿인 성호 이익(李瀷)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귀는 음의 영이고 신은 양의 영(鬼也者陰之靈, 神也者陽之靈)”이라 했고성현▿成峴)의 「용재총화」(傭齋叢話)에도 음양설에 의한 신과 귀신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렇게 귀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것은, 사후에 인간의 생명이 변형된 형태로 연속하는 것임을 믿는 사생관(死生觀)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교. 불교. 유교. 및 도교의 원리를 통일한 동학(東學)도 역시 “사람에게 혼과 백(넋)이 있는데, 혼은 하늘에 올라가서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귀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런데, 한국 유학(儒學)의 한편에서는 결국 신후담(愼後聃)의 말대로 “혼이란 형체에 의지하여 있다가 형체가 없어지면 소산(消散)하여 무(無)로 돌아가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러므로 민간의식(民間意識)에 크게 영향을 끼친 음양설에 의한 유교의 내세 형태에 대한 관념은 사실상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예컨데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천당 지옥설을 비판하여 이르기를 “중국에 한(漢)나라 이전에 죽었다가 도로 살아난 사람이 천당 지옥을 증거할 수 있었던 자가 없는데, 이제 윤회설만은 잘못이고 천당 지옥은 옳다 하겠느냐? 하▿고 그의 문인(門人)인 신후담도 또한 ”천당 지옥설은, 사람이 죽어서 혼유백강(魂遊魄降)하여 산변(散變)하면 혼이 없어지므로 의미가 없는 것이며, 복선화엄설(福善禍淫說) 즉 유교에서는 순리(順理)하면당연히 복을 받고 역리(逆理)하면 화를 당하는 것이므로 천당 지옥의 존재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 신후담은 “서학(西學=천주교)의 영혼불멸설도 탐내는 마음에 호응하는 것이며, 또 이것은 이단(異端)의 공통적 극원인 이심(利心)에서 나오는 것이라” 고▿비난하였다. 그러나 전통적인 유가풍속(儒家風俗)은 결국 무속의 정령숭배와 불교적 내세관과 및 도교의 자연주의가 결합된 그러한 혼합상태라고 보아야 하겠다.

이런 혼합상태는 현실적으로 한국인의 의식(意識)속에 있다는 것을 상례와 제례 의식(儀式)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광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신을 떠나 영원히 가버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삼혼칠백(三魂七魄)이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두 귀, 두 눈, 두 콧구멍, 입, 이렇게 일곱 군데에 일곱 가지 정령(精靈) 즉 칠백이 남는다고 생각하며, 또 이 칠백에서 떨어진 삼혼 중의 하나는 저승으로 가고 하나는 육신 특히 뼈 속에 남아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자유로이 방황한다는 것이며, 지상을 방황하는 혼은 주기적인 대접을 받으면 편안하나 그렇지 못하면 잡귀가 되어 나쁜 짓을 한다”는 것이다.

 

(4)무속

무속신앙에서 보는 영혼이 가서 영주(永住)한다는 내세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민간에서 상정(想定)되는 순수한 내세의 형태는 현세를 ‘이승’이라고 하는 한편 내세를 ‘저승’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죽으면 응당 ‘저승’으로 가는 것이고 거기서는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고 상정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낙원적 성격이 강조되지는 않는다. ▿강대(西江大)에서 개최된 종교학회,즉<종교별 사후세계>학술발표에서, 이수자(李秀子)는 <한국 무속에 나타난 죽음관>을 통하여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이르기를, “무속신앙에서는 죽음의 세계를 맑고 깨끗한 것으로 인식했는데 이는 삶의 세계인 이승을 상대적으로 부정(不淨)한 곳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로 민간의 관념속에 이와같이 순수한 내세(저승)형태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외래 종교의 영향을 받기 전, 원시 무속의 내세 형태가 바로 이와 같은 ‘저승’ 형태였던 것으로 생각한다. ▿러므로 무속에서 극락과 지옥을 말하는 것은 불교의 전래 이후에 불교의 극락과 지옥의 내세 형태의 영향을 받아서 변질을 가져온 후래적(後來的)인 형태로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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