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소재 단군신화> <설중환교수님 해석본>
고기에 적기를 옛날 중국 역사책과 한국의 책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옛날 환인 - 제석을 말한다 - 의 서자 환웅이 있었는데, 옛날에 환인 하나님이 하늘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그 나라의 이름은 환국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중에 한 사람이 환국의 높은 벼슬아치인 서자로 일하고 있었다.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 구하기를 탐내었다. 그는 그 무리들 중 가장 뛰어나 대인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는 늘 땅으로 내려가 인간세상을 구원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아래로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 3개를 주고는 보내어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이런 뜻을 헤아리고는 멀리 남쪽을 내려다보았더니, 마침 세 봉우리가 하늘로 치솟은 태백산이 보였다. 그 산 주변으로 사방이 기름져서 가히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땅이었다. 아버지는 이에 아들에게 천왕이 된 신표로 천부경을 새긴 거울, 북 ,칼을 주었다. 더불어 그는 이 모든 것이 나라를 바로 다스리는 기구이니, 둥근 거울은 백성들로 하여금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딸임을 거울에 비추어 보아 알게 하는 기구요, 네모난 북은 세상을 자연의 리듬에 맞게 다스리면서 사람들을 신명나게 하는 기구요, 세모난 칼은 홍익인간의 세상, 즉 사익을 추구하는 무리를 베어 공익을 위하는 나라를 세우라는 기구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세상에 나아가 진리를 탐구하고, 하늘의 이치에 맞게 나라를 다스리도록 명령했다.
환웅이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턱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그곳을 신시라 하였으니, 이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 이에 환웅이 자기를 따르는 추장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그곳에 신시라는 나라를 수립했다. 그가 나라이름을 신시국이라고 한 것은, 모든 백성들을 신과 같이 신성한 사람들로 만들고 나라도 하늘나라처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마음의 다짐이었다. 그때 나라 사람들은 그를 환웅천왕이라 불렀다. 또한 환웅천왕이 내려온 태백산을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늘 세계의 중심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다. 또 무슨 일이든지 생기면 산꼭대기에 차려둔 신단수에 가서 기도를 했다.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식량 인명, 질병, 형벌, 선악 등 무릇 인가 3백 6십여 가지의 일들을 주관하며, 세상을 이치로 교화하였다. 환웅천왕은 국무총리 풍백, 국회의장 우사, 대법우너장 운사를 거느리고, 다섯 부서장인 농수산부장관, 국방부장관, 보건사회부장관, 법무장관, 교육부장관 등과 함께 먹는 문제, 국방과 인권 문제, 건강과 질병 문제, 법률과 형벌 문제, 그리고 도덕과 교육문제 들을 주관하였다. 그는 이들과 함께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무릇 인간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마찰 없이 다루며, 혼란한 세상을 하늘의 이치대로 질서 있는 세계로 만들었다. 바로 하늘나라와 같이 아름다운 나라였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신웅에게 빌어 사람으로 탈바꿈하기를 원하였다. 이때 곰족과 범족이 같은 움막 마을에 살고 있었다. 당시 대체로 어리석고 미련한 족속을 곰족이라 했으며, 대체로 포악하고 탐욕스러운 족속을 범족이라 했다. 그들은 그때까지 동물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태백산 주위의 신시 백성들이 마치 신들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신시국의 백성들은 모두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살지 않고 서로 도와주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홍익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자극을 받아 이들도 이제 동물 같은 사람에서 벗어나 홍익인간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마침 곰족 한 사람과 범족 한 사람이 초대 환웅천왕을 신으로 모신 신단수 아래에가서 환웅신에게 ‘홍익인간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빌었다. 곰족은 여자였고, 범족은 남자였다. 마침 환웅전의 사제가 이들이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열성에 감동했다.
그때 신은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의 형체를 얻게 되리라'고 일러 주었다. 이에 사제는 신령스러운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통을 주면서, ‘너희들이 환웅전에 들어가 이것을 먹으면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기도한다면 곧 홍익인간이 될 것이다’고 일러주었다.
곰과 범이 이것을 얻어먹고 햇빛을 피한 지 삼칠일 만에 곰은 여자가 되었으나 범은 참지 못하여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 곰족과 범족이 햇빛이 들지 않는 환웅전에 들어가 이것을 먹으면서 햇빛을 피하고 기도한 지 3주 만에 곰같이 미련하나 참을 성 많은 곰족 여자는 훌륭한 홍익인간으로 거듭 태어났다. 그러나 포악하고 탐욕스러운 범족 남자는 성질을 참지 못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말았다. 이에 곰족은 환웅족과 더불어 신시국의 백성이 되었으나, 범족은 멀리 쫓겨났다고 한다.
웅녀는 더불어 혼인할 사람이 없는지라 이에 매양 신단수 밑에서 빌며 잉태하기를 원하였다. 홍익인간처럼 훌륭한 여자로 거듭난 곰녀는 주변에 그녀와 같이 혼인할 만큼 훌륭한 남자를 쉽게 만날 수 없었다. 이에 매번 신단수 아래로 찾아가 짝이 될 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이 이에 잠깐 사람으로 바뀌어 그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잉태하여 낳아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이때 한 영웅이 나타나 환웅천왕의 옷으로 멋지게 차려입고는 그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다. 아들의 이름을 왕검으로 불렀다. 이분이 뒤에 단군조선의 초대임금이 된다.
단군왕검은 요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쉰 해가 되던 경인년-당요 즉위 원년은 무진년이니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사실이 아닌지 의심스럽다-에 평양성-지금의 서경-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하였다. 중국 요임금이 즉위한 해인 무진년에, 단군왕검은 땅이 기름지고 넓고 평평한 평양성에 도읍하고 처음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또 백악산 아사달로 도읍을 옮겼는데, 그곳을 궁홀산, 또는 금미달이라고도 하는데, 1천5백년이나 나라를 다스렸다. 단군은 요즘 말로 하면 대통령이다. 그로므로 대통령 왕검이 뒤에 백악산 아사달로 도읍을 옮겼다. 수도 한가운데 태백산의 축소판으로 피라미드 같은 산을 세우고는 백악산이라 이름 불렀다. 단군은 틈이 나는 대로 그곳에 들러 천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단군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1,500여 년이나 평화롭게 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무왕이 즉위하던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자 단군은 곧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로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었으니 수는 1천9백8세였다어떤 나라도 세월이 지나면 힘이 약해지기도 하는 법, 마침 고조선은 영토 일부를 주나라에게 빼앗겼다. 주나라 무왕이 기묘년에 조선으로부터 빼앗은 그 땅에 기자라는 사람을 총독으로 임명하고는 대신 다스리게 하였으니 그곳을 기자조선이라 했다. 이에 단군은 수도가 적의 국경과 너무 가까워졌으므로, 동쪽으로 좀 떨어진 장당경으로 수도를 옮겼다. 뒤에 단군은 힘을 길러 주나라로부터 기자의 땅을 회복하고는, 원래의 수도 아사달로 다시 돌아왔다. 세상은 항상 변하는 법, 단군이 나라를 다스린 지 1,908년 만에 나라가 망했다. 전하는 말로는 마지막 단군은 산으로 숨어서 선교를 수련하여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부여가 고조선을 잇고, 부여는 이후 다시 삼국으로 나뉘어졌으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이후 고려, 조선, 그리고 대한민국으로 단군의 역사는 계속 내려오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군의 자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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