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율 있는 글/古展詩調

이옥 - '거미를 읊은 부'

눈자라기 2009. 3. 15. 11:38

 

 

 

 

이자가 저녁의 서늘함을 맞아 뜰에 나가 거닐다가 거미가 있는 것을 보았다.

 

짧은 처마 앞에 실을 날리며

해바라기 가지에 그물을 치고 있었다.

가로로 치고 세로로 치고

벼리로 하고 줄로 하는데,

그 폭이 한 자가 넘고

그 만든 것은 규격에 맞으며

촘촘하고 성글지 않아

실로 교묘하고 또 기이하였다.

이자가 기심이 있는 것이라 여겨

지팡이를 들어 그 실을 휘둘렀다.

 

다 걷어내고 또 그것을 내치려고 하는데, 실 위에서 소리치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내 실로 짜서

내 배를 도모하는 것이거늘

그대에게 무슨 관련이 있기에

나를 이같이 해치고 있는가."

 

이자가 성내어 말했다.

 

"덫을 설치하여 산 것을 죽이니

벌레 중의 적이라

내 장차 너를 제거하여

다른 충류에게 덕을 베풀려 한다."

 

다시 웃으며 말하는 것이 있었다.

 

"아, 어부가 그물을 쳐서

바다 고기들이 걸려드는 것이

어부가 사나워서인가.

우인이 그물을 놓아

들짐승이 푸줏간에 올려지는 것이

어찌 우잉ㄴ의 교이겠는가.

법관이 법을 공포하여

모든 완악한 사람이 옥에 갇히는 것이

어찌 법관의 잘못이겠는가.

그대는 어찌 복희씨의 그물을 시비하지 아니하며

백익의 공열으 부정하지 아니하며

고요의 형벌 제정을 책망하지 아니하는가?

 

무엇이 이것과 다르겠는가? 또 그대는 내 그물에 걸려든 놈들을 아는가?

 

나비는 오직 허랑방탕한 놈이라

분 단장하여 세상을 속이고

번화함을 쫓고 사무하여

아첨하고 굄 받는 간신이나 폐희와 같다.

 

이 때문에 내가 그것을 그물로 잡는다.

 

파리는 참으로 소인배라

옥 또한 오점이 찍혔으며

주육에 생을 잊어버리고

이끗을 좋아하여 싫증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내가 그것을 그물로 잡는다.

 

매밈는 자못 청렴, 정직하여

글 하는 선비와 비슷하기도 하나

'선명'이라 스스로 과시하며

시끄럽게 울어 그칠 줄 모른다.

 

이리하여 내 그물에 들게 된 것이다.

 

벌은 실로 시랑 같은 놈인지라

그 몸에 꿀과 칼을 지니고

망령되이 관아에 나아간다고 칭하고

공연히 꽃 탐하기를 일삼는다.

 

이로써 내 그물에 걸린 것이다.

 

모기는 가장 응큼한 놈이라

성질은 도철과 같아

낮에는 숨고 밤에는 나타나서

사람의 고혈을 빨아댄다.

 

이 때문에 내 그물에 들게 된 것이다.

 

잠자리는 조행이 없어

경박한 공자처럼

편안히 있을 겨를이 없으며

잠깐 사이에도 바람처럼 날아다닌다.

 

이 때문에 또한 내가 그것을 그물로 잡는 것이다.

 

가령 그밖에 불나방이 화를 즐김과

초파리가 일을 좋아함과

반딧불이 허세로 불빛을 내는 것과

하늘소가 무람하게도 그 이름을 훔치는 것과

하루살이가 화려한 옷차림을 하는 것과

말똥구리가 수레바퀴를 막아섬과 같은 것들은

재앙이 자기로 말미암아 생겨나

흉액을 피할 줄도 모르고

몸이 덫에 걸려

간과 뇌가 땅바닥에 칠하게 된다.

아, 세상은 성강의 때가 아니어서

형벌을 놓아둘 수도 없고,

사람은 신선이나 부처가 아니어서

소찬만 먹을 수도 없다.

저들이 그물에 걸린 것은

곧 저들의 잘못이지

내가 그물을 쳤다고 하여

어찌 나를 미워하는가?

또 그대가 저들에겐 어찌 사랑을 베풀면서

나에게만은 어찌 화를 내고

나를 훼방하면서

도리어 저들을 감싸려 하는가?

아, 기린은 사로잡을 수 없는 것이며

봉황은 유입하 수 없는 것이니

군자는 도를 알아서

유설로써 재앙을 입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것을 거울삼아

삼가고 힘쓰시라

그대의 이름을 팔지 말며

그대의 재주를 자랑하지 말며

이욕으로 화를 부르지 말며

재물에 목숨을 바치지 말며

경박하고 망령되지 말며

원망하고 시기하지 말며

땅을 골라서 밝고

때를 보아 오고 가라.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는 더 큰 거미가 있어

그 그물이 나보다 천억 배가 될 뿐이 아닐 것이다. "

 

이자가 듣고서

 

지팡이를 던지고 달나다가

세 번이나 넘어지면서 겨우 문지방에 이르렀는데,

지게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우고 나서야

몸을 구부리고 비로소 한숨을 쉬었다.

거미는 실을 내어서

다시 처음과 같이 그물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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