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타고난 민족정서는 ‘신명’
- ‘한(恨)’은 일제가 만들어낸 식민지 정서 -
1. ‘한’, 그 섣부른 전제와 편견
우리 민족은 정서적으로 어떤 민족이라 할 수 있는가. 한 마디로 쉽게 단정하여 이야기할 수 없다. 여러 가지 정서를 두루 지녔기 때문이다. 어느 민족이든 희로애락의 감정을 두루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민족 정서에 대한 상대적인 논의는 가능하되 전적으로 무엇이라 규정하는 것은 인간의 다양한 정서 자체를 부정하는 무리한 견해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을 원한 맺힌 사람으로 규정하고 한국인을 ‘원한인’으로 설정할 때 우리의 모습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이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가 하는 사실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민족정서란 한국인의 미의식과도 연결되는데, 미의식 또한 일방적으로 논의한 경우는 흔하지 않다. 조윤제처럼 생활태도와 연관지워 은근과 끈기를 두드러지게 내새운 경우가 있는가 하면, 구자균은 양반과 평민으로 나누어 점잖음과 우스움 등 대립적으로 포착하고, 조지훈은 우아와 비장 및 관조, 신동욱은 숭고미와 골계미, 감상미 등 셋으로 미의식을 포착하였다. 그리고 조동일을 숭고와 우아, 골계, 비장 미를 범주화하고 우리 미의식의 역사적 전개를 검토하였다. 이러한 미의식들을 민족정서와 연관지워 본다면 대부분은 한과 무관하거나 오히려 한과 대척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정서를 한으로 규정하고 한의 정서만을 집중적으로 논의 하며 민족정서를 한으로 몰고가려는 것은 섣부른 전제이자 편중된 시각일 따름이다.
2. ‘한’의 자리에서 보이는 해학과 여유
‘한을 마음에 맺히고 응어리진 복합심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한국인이 어떠한 정서적 반응을 나타내는가, 또는 그러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하는가 하는 것을 주목해보면, 우리 민족정서를 쉽게 포착할 수 있다. 사랑을 잃거나 빼앗겼을 때 마음에 상처를 받기 쉽고 이것이 한이 될 수 있다. 이별의 노래부터 보자. “가시리 가사리잇고....... 잡사와 두오리마는 선하면 아니 올세라 설온님 보내옵나니 가시는듯 다시 오소서”라고 하는 <가시리>를 보면, 가는 님에게도 한을 남기지 않고 스스로에게도 한을 만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별의 노래가 아니라 오히려 다시 올 것을 기대하는 희망의 노래라 할 만하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고 한 <아리랑>의 경우에도, 님을 원망하며 마음 속에 사무친 정서를 품기보다 오히려 멀리 못가서 주저앉고 말 것이라는 표현 속에는 갈테면 가라는 식의 반어적 해학이 깃들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을 때 받는 충격과 상처는 이별보다 더 깊기 일쑤여서 흔희 한으로 남게 마련이다.
<처용가>부터 보자. “서울 밝은 달에 밤드리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보니 가랑이 넷이어라 둘은 뉘해인고 본디 내해다마는 앗아늘 어찌 하릿고”하고, 처용은 자리를 물러나 오며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원한이 맺혀 저주를 하거나 복수심에 불타 칼을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본디 자기 것이지만 빼앗아가는 것을 어찌 하겠느냐 하는 너그러움을 보이며 물러남으로써, 오히려 부인을 탐한 역신에게 감동을 준다.
최근까지 널리 불리는 민요 가운데 하나인 <갑돌이와 갑순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갑돌이와 갑순이는.....서로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갑순이는 시집을 갔더래요. .... 고까짓것 했더래요.” 자기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 여인에게 ‘고까짓것’하고 마는 여유 속에 배신감이 응어리질 까닭이 없다. 이른바 한의 노래라고 하는 <황성 옛터>나 <타향살이>등의 대중가요는 우리 전통가요가 아니고 일제시대에 형성된 것으로서, 일본풍의 애조가 짙게 베어 있는 식민지시대의 유행가일 따름이다.
3. 우리 예술에 나타난 신명과 풍자
우리의 한을 이야기 할 때, 흔히 지배층의 억압 속에 시달리고 수탈당한 민중의 정서가 한으로 맺혀 있다고 이해하기 십상이다. <이수일과 심순애>나 <홍도야 울지마라>와 같은 연극이 실제로 그러한 정서를 짙게 깔고 있다. 그러나 이들 신극 또한 일제시대에 일본의 작품들을 번안하여 공연한 것일 뿐, 우리 민족 정서를 갈무리하고 있는 우리 민족의 연극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자료를 중심으로 한의 정서를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이다. 민족정서는 우리 민속극에서 찾아야 한다.
탈춤과 꼭두각시놀음 등 민속극을 보면 신분적 특권을 누리며 아랫것들 위에 군림하는 양반들의 위엄을 여지 없이 풍자하고 그들의 가치관을 일거에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다. 종교적 관념을 내세우며 숭고한 척하는 승려들도 마찬가지이다. 세속적인 놀이 본능과 성적 본능을 자극하여 그들의 믿음이 헛된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해학적으로 폭로한다. 우리 민속극은 반상 또는 성속의 갈등을 극적으로 표출하면서도 “춤대목’에 이르면 ‘우리 다 같이 춤이나 신나게 춰보세”하고 더불어 춤을 추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 극적 갈등도 서로 원수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 화해하여 더불어 하나가 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민중은 사회적 모순에 의하여 조성된 억압구조에 굴복하지 않고 이를 풍자와 해학으로 극복하는 신명을 발휘한다. 그러므로 우리 민속극에는 한의 찌꺼기조차 찾기 어렵다.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규모의 미술인 중국의 강고한 미와 빛깔의 미술인 일본의 명랑한 미에 비하여, 우리 미술은 선(線)의 미술이므로 쓸쓸한 비애의 미를 지녔다고 하였다. 미술을 갈래지우는 도식도 문제이지만 우리 미술에 대한 인식도 잘못되었다. 우리 민화가 지니는 빛깔의 원색적 화려함을 제쳐놓았을 뿐 아니라, 탈과 장승 등 우리 조각품에 나타난 골계적 조형미를 지나쳐 버린 탓이다. 가장 흔하게 보는 민화 가운데 이른바 작호도(鵲虎圖)라고 하는 ‘까치 호랑이’ 그림을 보라. 거기에 무슨 비애와 쓸쓸함이 있는가. 오히려 한바탕 웃음이라도 터뜨려야 할 만한 해학이 깃들어 있다. 단원의 풍속도는 또 어떤가. 목욕하는 여인네의 속살을 숨어서 훔져보는 소년들의 짓궂은 시선과, 한참 용을 쓰는 씨름판에서 엿판을 메고 가위질하는 엿장수의 느긋한 표정 속에는 여유와 해학이 넘친다.
4. 우리 민족이 타고난 정서 ‘신명’
우리 민족 정서는 외국에 나가 사는 동포들을 통해서 상대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중국의 한인 자치구역에 사는 동포들은 크고 작은 모임에서는 물론 심지어 백두산까지 들놀이를 가서 풍물을 치고 춤을 추며 신명풀이를 한다. 타쉬켄트 공화국의 알마아따에서도 우리 동포들이 곧잘 음악에 맞추어 삼삼오오 춤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때 방송국에서 행락질서를 문제삼으며 유원지에서 집단적으로 풍물을 치며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보도한 적이 있는데, 이 또한 우리 민족의 신명이 남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정서는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무천이나 영고와 같은 삼한시대의 제천행사때부터 남녀노소가 구별없이 무리지워 밤낮을 쉬지 않고 술 마시며 노래와 춤을 즐겼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 정서를 ‘한’이라고 하는 것은 일제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식민정서일 뿐이다. 우리 민족이 타고난 본디 정서를 굳이 한 마디로 나타내라고 한다면 차라리 ‘신명’이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민족정서의 실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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