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
우리가 말하는 천국 즉 유토피아는 그리스 합성어이다. ‘없는’ ‘없음’이라는 뜻을 가진 ‘ou-'와 장소를 의미하는 ’toppos'를 합해 만든 말이다. 즉 어디에도 없는 완벽한 사회이면서 궁극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사회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당신들의 천국은 천국으로 상상되는 유토피아의 공간과 지배 통치아래 생활하는 디스토피나의 공간을 아우르는 소록도가 배경이다.
이 작품은 1962년 소록도 나환자들이 오마도 앞 바다를 메워 자신들의 생활터전을 마련하려했으나 정부의 개입으로 간척지에서 쫓겨난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감동이 더 진하게 다가온다.
소설의 시작은 소록도에 원생 탈출사고가 일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날은 조백헌 대령이 새로 병원장으로 부임해 오는 날이었다. 소록도 사람들은 환자로서의 삶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지만 원장들은 정상인과 환자를 구분하는 편견 때문에 원생들을 환자로만 취급했다. 그래서 인간으로써 대우 받고 싶은 원생들은 탈출을 시작한 것이다. 소록도는 나환자들의 치료와 요양을 위한 공간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상인과 환자를 구별하고 환자들을 고립시키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전직 군의관 출신 조원장은 불신감과 패배의식으로 가득한 원생들을 바꿔 놓기 위해 끈기를 갖고 행동한다. 축구경기를 통해 승리를 맛보게 함으로써 섬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후 원장은 진심어린 사업 계획을 드러낸다. 하지만 원생들은 원장을 불신하며 무관심한 반응을 보인다. 그것은 그동안 지배자의 입장에서 원생들을 위한 천국을 건설하려했던 역대 원장들 때문이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주정수 원장이다. 그는 낙원의 건설을 장담했었다. 그 의지에 감동한 원생들은 열심히 일하여 섬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다. 그러나 차츰 주원장과 원생들의 관계는 절대적인 지배자와 복종해야하는 피지배자의 관계로 변하게 된다. 권력에 아첨하는 무리들은 주원장의 동상까지 세우고 매월 의무적인 동상참배를 강요한다. 본시 권력이라는 것은 혼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권력에 빌붙어 자신의 안위는 물론 권력자의 권력 유지를 위해 무단히 애쓰는 사토 같은 인물이 받쳐주어야 단단하게 형성되는 것이다. 사토는 소록도를 배반하고 원생들로 하여금 배반을 배우게 하고 주성수 원장이 원생의 칼에 찔려 죽게 만든 비극의 인물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소록도는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이 디스토피아를 형성하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원생들은 조원장의 목숨을 건 맹세를 받아 내고서야 간척사업 계획에 동참한다. 바다와 인간, 인간간의 싸움이 힘겹게 치러진다. 간척 사업동안 원생들은 열심히 일했으나 폭풍과 자연 침하로 돌둑은 번번이 가라앉곤 했다. 그때마다 조원장은 불안한 심정으로 방황하는 원생들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어느 날, 간척장을 당국에서 인수 하겠다며 작업조사반이 섬에 들어온다. 분노한 조원장은 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결국 다른 병원으로의 전임발령을 받고 만다. 조원장은 어떻게 해서든 사업을 완성 시켜 놓고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사실을 원생들에게 이야기 하고 사업을 빨리 진척 시켜줄 것을 독려한다. 한결같은 조원장의 모습에 마음이 움직이고 있던 원생들은 그의 전임 발령를 취소하라는 청원 서명을 벌이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상욱은 원장을 찾아와 이것을 중단시킬 것과 사업의 완성 여부에 상관없이 이 섬을 떠나라고 충고한다. 왜냐하면 간척사업의 과정에서 원생들은 이미 많은 것을 성취했으며, 그 사업의 완성을 보고 싶은 것은 혼자서 모든 일을 완성해 내고픈 원장의 욕심일 뿐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설사 원장이 의식적으로 동상을 짓지 않았다 하더라도 섬사람들이 스스로 지어 바칠 그 '동상'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원생들의 가슴에 보이지 않는 동상이 자리 잡게 될 때, 그것은 아무리 선의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다시 동상의 노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황장로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조원장은 간척 사업의 결말을 보지 않고 섬을 떠난다. 황장로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수평적이고 평등한 사랑이 이루어지고 자유로운 의지가 교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동체 일반 의사에 맞는 힘이 행사 될 때 비로소 진실하고 정당한 힘과 윤리가 실현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소록도의 천국이 소록도 밖의 천국과 구별이 될 때 그것은 결코 우리들의 천국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힘을 행사하는 원장들 당신들의 천국에 불과 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5년 뒤 조원장은 민간인의 신분으로 돌아와 섬의 주민이 된다. 그는 신문기자 이정태와의 대화를 통해 사람들 간의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을 받는 자의 사이에 믿음을 기초로 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또 다스림을 받는 자의 자유 의지로서 양자가 화해하여 한 길로 조화를 이룩해 나가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시민으로 원생들과의 운명을 같이 하기위해 돌아온 조원장은 믿음 속에서 이 섬의 자유와 사랑을 옳게 행하는 것에 실패한다. 정상인과 나환자 사이의 운명적 거리까지 사랑과 자유로 메울 수 없다는 원본적 한계에 부딪친 것이다. 그는 믿음을 넓혀가는 것을 작은 것부터 한 가지씩 실천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실천으로 미감아 여교사 서미연과 음성 나환자 윤해원의 결혼식 주례를 맡는 것이 소설의 끝부분이다.
주정수 원장과 조백헌 원장의 목표는 환자들을 위한 낙원을 조성하는 것이다. 주원장은 권력을 과시하고 명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실패한다. 위선과 허위로 가득찬 권력을 상징한 동상이 그 예다. 반면에 조원장은 섬을 개혁하고자 하는 선의의 의도를 끝까지 유지하려고 애쓴 인물이다. 하지만 그도 실패하고 만다. 그 원인은 원생들이 자발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에 옮긴 ‘안’으로 부터의 개혁이 아니라 지배자의 지휘로 움직인 ‘밖’으로부터의 개혁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의식중에 조원장이 권력에 대한 미련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가 항상 군복을 입고 총을 차고 다녔다는 사실은 권력의 속성을 가시화한 것이라 하겠다. 사실 낙원 건설이란 원장의 입장에서는 원생을 위한 것이며 지배자의 피지배자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지만 원생의 입장에서 보면 원장의 권력 과시를 위한 것이며 지배자의 피지배자에 대한 강요와 억압의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소설이 끝부분인 미감아 서미연과 음성 나환자 윤해원의 결혼식은 환자와 인간의 결합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힘의 행사는 사랑과 자유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천국이 다른 인간의 천국과 대립되지 않을 때 천국의 계단에 한 걸음 다가 설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사이의 협력과 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즉 작가는 이를 통해 자유와 사랑을 이루려하는 천국의 개념위에 정상인과 나환자 혹은 인간과 환자 사이의 운명을 얹어 놓음으로써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을 향한 근원적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삶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여전하고 편견이 심어준 약자의 열등감이 존재한다. 평화는 일방적인 어느 한쪽의 관대함에서 오는 게 아니라 힘의 균형에서 온다는 것을 정설로 받아들이는 현실에서 우리들의 천국은 언제쯤이면 실현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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