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종단
호종단은 제주에서
흔히 고종달이라 부른다. 고종달은 중국에서 온 풍수 사였다. 그는 제주가 장차 왕이 날 땅이라, 그냥 놔두면 중국이 위협받을 것이 두려워한 중국 왕이 파견한 신하였다. 그는 제주도에 입도한 즉시 그가 갖고 온 지리 서에 의하여 동쪽으로부터 땅의 맥을 끊어오고 있었다.
그가 지금 서귀포시 홍리 지경에 이르러 끊을 지맥을 찾고 있었다. 그때 백발노인이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였다. 농부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쳐다보고만 있는데, "저 물을 한 그릇만 떠다가 저기 있는 소길마 밑에 놔 주십시오." 하고 그 백발 노인은 다시 사정하였다.
농부는 무슨 사연인지는 몰랐으나 노인의 다급한 사정을 봐서 그렇게 해주었다. 얼마 있더니 그 지리 서대로 지맥을 찾던 고종달이 그 밭가는 농부에게 다가와서는, '꼬부랑나무 아래 행기물을 물었다. 농부는 그런 곳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곳이라,
"나는 이곳에 한 삼십년 살았으나 그런 이름 가진 땅은 처음 듣는 바요."
하였다. 사실 농부도 그런 곳을 알 리가 없었다.
"틀림없이 이 부근인데……"
고종달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주변을 몇 번 돌다가 돌아가 버렸다. 그때 아까 떠다 놓아둔 물그릇 속에서 그 백발노인이 나와서 고맙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리곤 어디론지 사라져버렸다. 그 노인이 바로 수신이었다. 그리고 '꼬부랑나무 아래 행기물이 지리서의 땅이 바로 소길마 밑에 놓여진 물그릇이었던 것이다. 수신은 그렇게 밭가는 농부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되었고 그래서 고종달은 홍리 지경의 지맥을 끊지 못하였다. 그래서 홍리 지경에는 샘물이 나게 되었다.
이 지역에는 단혈을 실패한 고종달은 다시 서쪽으로 가면서 지맥을 끊어나갔다. 그래서 그가 안덕면 사계리 지경 산방산 부근에 이르렀다. 이곳은 지리 서에 왕후지리로 되어있었다. 즉 왕이 날 지맥이라는 것이다. 중국 왕은 제주는 왕이나 장군이 날 지세라는 것을 알고 늘 근심하던 차에 고종달을 보내었던 것이다. 고종달은 지리 서를 살피면서 왕후지혈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용머리였다. 용의 머리처럼 생긴 지형이었다.
만약 이 땅이 살아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왕이 될 것이라도 믿었다. 고종달은 용의 잔등을 끊었다. 바로 그 끊은 데서 시뻘건 피가 그 주변을 물들였고 결국 제주에는 왕도 용감한 장수도 나지 못하여 다른 지역의 지배만 받으며 어렵게 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지금도 그 곳 용머리라 불리는 곳에는 꼬리와 잔등이 짤려진 것 같은 모양의 지형이 있다. 그렇게 제주도의 인물 날 맥을 끊고 서 나가던 고종달은 한경면 지경 차귀섬으로 배를 타고 나가려 하다가 한라산 산신의 노여움을 받아 태풍을 만나 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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