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리유적의 위치
청원 소로리 구석기유적은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 156-1(밭) 에 위치한다
유적의 북쪽으로는 차령산맥 줄기인 목령산(228.7m)과 서쪽으로는 국사봉(171.0m)이 있으며, 여기에서 남동쪽으로 크게 3갈래의 능선이 뻗어 내리고 있어 넓은 들판을 형성하고, 동쪽의 오창면 부근은 비교적 험준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유적 앞쪽인 남쪽으로 900m쯤 떨어져서는 금강의 주요한 지류 가운데 하나인 미호천이 완만한 굽이로 흐르고 있으며, 이 미호천 줄기를 따라 청주 분지의 저평한 들판이 넓게 발달하고 있어 충북 제일의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다.
소로리 유적은 한국토지공사의 의뢰를 받아 1994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충청북도의 역점사업으로 세워지는 오창과학산업단지 건설예정지역에 대한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찾게 되었다.
지표조사시 찍개,긁개,홈날,몸돌,격지 등의 구석기 유물이 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수습되고, 제4기 지층이 비교적 잘 남아 있음을 확인하여 시굴조사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유적의 분포범위와 문화층의 확인을 위한 시굴조사(1996. 12~1997. 1)를 실시하여 구석기 문화층과 함께 두텁게 잘 발달된 토탄층을 확인하였다.
이 유적의 제1차 발굴조사(1997. 11.~1998. 4)는 구석기 문화층과 토탄층에 대하여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충북대 (구석기 A지구-토탄층 Ⅰ-Ⅱ구역), 단국대 (구석기 B지구), 서울시립대 (구석기 C지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제4기지질) 등 4개 기관이 참여하여 충북대 박물관의 주관으로 조사단을 구성(조사단장 이융조 당시 관장)하고 조사를 진행시켰다.
제2차 발굴조사(2001. 9~2001. 10. 31)는 청주 MBC의 특집프로그램 '13,000년전의 비밀-소로리볍씨' 제작의 일환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충북대학교 박물관(관장 신호철)이 소로리 A지구 Ⅱ구역의 토탄층을 조사하였다.
소로리 A지구 II구역에서 출토된 볍씨는 고대벼 18알,유사벼 41알 등 모두 59알이 확인되었다(이융조.우종윤, 2002). 이렇게 찾아진 고대벼는 japonica형과 indica형(오른쪽 상세설명 참조)의 두 종류로 밝혀졌으며, 유사벼는 유사벼 1형과 유사벼 2형으로 분류되었다.![]() ![]() 그래서 고대벼는 I형(type), 유사벼는 II형으로 하고 다시 japonica형은 소로리벼 I-1형, indica형은 소로리벼 I-2형으로 하며, 유사벼 1형은 소로리벼 II-1형), 유사벼 2형은 소로리벼 II-2형으로 분류하기로 한다. 이들 계측치(아래 표 참조)의 평균을 계산해 보면 소로리벼 I-1형은 長(long) 7.2mm, 幅(wide) 3.08mm, II-1형은 6.45mm, 1.7mm의 외형적 수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볍씨는 대부분 중부토탄층(12,500~14,800 yr : MSL 32.13~31.36m)에서 출토되었으며, 하부토탄층에서는 유사벼 1립이 출토되었다. 1차 조사에서는 중부(위)토탄층에서 「고대벼」가, 하부(아래)토탄층에서 유사벼가 출토되었으나, 2차 조사에서는 중부토탄층에서 고대벼(「소로리벼 I형」)와 유사벼(「소로리벼 II형」)가 같이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원래의 위치(in situ)를 찾는데 성공하였다. 중부토탄층에서는 상당히 많은 곤충자료들이 검출되었다. 특히 딱정벌레과(Carabidae)는 애충시절 중 벼과 식물의 줄기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져, 볍씨 출토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충북대학교 박물관, 2001). 토탄층의 시료를 통한 꽃가루 분석(김주용 등, 2002)으로 벼과의 생존조건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는 해석은 安田喜憲박사의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로 뒷받침된다. 자연환경적으로 소로리 볍씨의 존재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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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부 토탄층은 해발(MSL) 33.0~32.8m에 렌즈 형태로 발달되어 있으며 그 연대치는 9,450BP(GX-28506)와 9,580BP(GX-28505)로 밝혀졌다. 많은 볍씨가 출토되어 1-2차 조사에서 중점적으로 발굴된 중부 토탄층(MSL 32.13~30.5m)을 미국 Geochron Lab.(GX)에서 8개의 연대치를, 서울대학교 AMS연구실(SNU)에서 6개 등 모두 14개의 시료를 연대측정치가 12,500~14,820 BP를 나타내고 있다. 소로리 A지구 토탄 Ⅱ구역은 3개의 토탄층으로 형성되어 있다. 상부(9,500 BP, 연대측정자료 2개), 중부(12,500-14,820 BP, 연대측정자료 14개), 하부(16,300-17,300 BP, 연대측정자료 5개) 토탄층의 연대를 미국 Geochron Lab.(GX)와 서울대 AMS연구실(SNU)에서 교차측정한 결과 동일한 절대연대값을 얻어 토탄 퇴적층위가 매우 안정적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중부 토탄층(해발 32.13-30.5m)의 상층(32.13m)에서 출토된 유사벼를 직접 연대측정한 결과 12,500 BP(SNU 01-293)로 나타나 토탄층과 볍씨의 연대가 일치하여 같은 시기에 존재하였음을 증명하였다. 또한 중부 토탄층의 중부 아래에 해당하는 해발 31.4m 층에서 「소로리 Ⅰ-1형」(japonica)이 출토되었는데, 절대연대값이 13,920 BP(SNU 01-291)로 밝혀져 주목된다. 소로리에서 찾아진 볍씨는 지금까지 밝혀진 자료(중국 강서성 仙人洞동굴 10,500 BP, 중국 호남성 玉蟾岩 동굴유적 11,000 BP)와 비교하여 보아도 지금까지로는 가장 오래된 볍씨인 것으로 밝혀져, 벼의 기원,진화,전파 등에 관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
그렇다면 벼에 대해 왜 이렇게 관심을 가질까?
농경(農耕)의 시작은 인류가 탄생된 이후 불(火)의 발견과 함께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할 수 있다.
농경중의 으뜸인 쌀(벼)의 시작은 언제부터 시작하여 발전해 왔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전세계의 많은 학자들이 연구와 고증을 계속 하고 있다. 그것은 세계 인구의 60%이상이 쌀(벼)을 주식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벼의 기원지에 관하여 여러 가지 주장이 있어왔지만, 주로 중국을 중심으로 발전된 것이라고 주장되어 왔다.
1970~80년대까지는 주로 황하 유역에 있는 유적에서 발굴된 볍씨들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주장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양자강 유역에 있는 유적에서 밝혀진 자료들이 그보다 오래된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 좋은 예가, 호남성 도현 옥섬 유적에서 출토된 볍씨가 만 천년으로 밝혀지면서, 이 주장은 더 굳어지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청원 소로리 볍씨가 출토되었다.
1994년 충북 청원군 소로리 일원에 오창과학산업단지의 조성 계획이 수립되고,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사전 지표조사가 실시됐다.
지표조사로 구석기 유물들을 확인하여 1997∼98년에 제 1차 발굴작업이 실시되면서, 구석기 유물들과 함께 소로리 볍씨가 처음 찾아져 학계에 보고하여,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졌다.
오창산업단지 예정지 토탄층에서 발견된 볍씨는 고대볍씨임이 밝혀졌고, 청주문화방송국에서 특집 다큐멘터리 프로제작이 확정되면서 2001년 2차 발굴작업이 실시됐다.
1차 발굴은 구석기 문화층을 중심으로 조사가 이루어졌고, A지구 II 구역 토탄층 일부에 대해 발굴작업이 이뤄졌지만, 2차 발굴작업은 볍씨를 찾는 작업이라 대나무칼로 토탄층을 얇게 쪼개고 쪼개 수거된 토탄들을 물체질 정밀작업을 실시하여 고대벼 6톨과 유사벼 30톨을 찾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출토된 볍씨는 바로 서울대학교 AMS(방사선탄소연대측정) 연구실과 미국의 지오크론(Geochron Lab.)’연구실로 보내져, 1만 3000년~1만 5000년전의 절대 연대값을 얻어 '소로리 볍씨'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임이 판명됐다.
소로리 볍씨가 1만 5000년전 것으로 판명되자 일부 학계에서 의문이 제기됐다.
즉, 1만 5000년전은 구석기말 빙기의 끝무렵인데 한반도에서 아열대 식물로 알려진 벼가 추운 기후에서 자랄 수 있었을까? , 또 그 벼가 야생벼인지, 재배벼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 고증을 얻기 위해 청주MBC 취재팀이 국립 작물시험장 춘천출장소에서 냉해실험을 통해 벼가 자랄 수 있는 온도를 실험한 결과, 벼가 자연상태에서 최저 발아온도가 섭씨 20도로 알려졌지만, 실험결과 13도에서도 70%이상이 발아되어 생성되는 연구 결과를 얻게되었다.
냉해실험을 통해 따뜻한 기후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진 벼가 기후적응을 잘하는 식물로 1만 5000년전의 학설이 긍정적으로 무게가 실려졌다.
볍씨를 분석한 허문회(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서학수(영남대학교 교수), 박태식(작물시험장 박사), 조용구(충북대학교 교수) 등의 연구에 따라, 소로리 볍씨는 재배벼 특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여기에 따라 이융조(충북대학교 교수)는 재배벼 이전의 순화벼로 국내외 학계에 발표하였다.
2003년 10월 22일, 세계적 권위를 갖고 있는 영국 BBC 방송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소로리 유적에서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라고 하는 타이틀로 보도하였으며, 인터넷판으로 다시 그 내용을 전 세계에 보도하여, 이제는 소로리 볍씨가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인 것으로 공인받은 셈이다.
소로리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구석기시대 야외유적과 토탄층이 함께 확인된 곳으로 고고학과 고생물학, 제4기 지질학 등 학문연구를 통하여 벼의 기원과 진화, 전파경로를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며, 2004년 1월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 문화유산 관계자들은 이 유적이 세계 문화 유산으로의 등재 가치가 충분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으며,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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