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이야기

[스크랩] 수로부인

눈자라기 2008. 10. 25. 22:49

* 삼국유사 본문의 이야기를 약간의 표현상의 각색을 넣어서 정리한 내용입니다.  

 

아름다운 수로부인


신라 성덕왕 때의 일이다.

따사로운 햇살이 가는 바람을 타고 훅 불어왔다. 부드러운 땅을 헤치고 자란 봄풀이 바람결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하얀 나비가 날개를 팔랑거리며 꽃 덤불 사이를 날아다녔다.

이 따사롭고 평화로운 날에 순정공의 집은 떠들썩했다. 순정공이 강릉지방의 태수로 임명되어 길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하인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며 짐을 쌌다.

봄 햇살은 먼 길을 가기 좋을 만큼 따사로웠다. 긴 여행 끝에 바닷가에 이른 일행은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폈다. 바위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서 바다를 굽어보고 있는 아름다운 장소였다.

꽃가마의 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내렸다.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이었다.

“참, 언제 봐도 아름다운 분이야. 이 경치에 어찌 저리 어울리는지!”

“정말이지 눈이 부실 정도야.”

수로부인은 그윽한 눈길로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한쪽을 바라보니 푸른 바다가 넘실넘실 춤추는 곳에서 향기로운 바다 내음이 산들바람을 타고 밀려왔다. 반대쪽을 바라보니 깎은 듯 우뚝 솟은 바위 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절벽을 바라보던 수로부인의 고운 눈길이 한곳에 딱 멈추었다. 위태로운 바위 절벽 꼭대기에 철쭉꽃 한 무리가 활짝 피어 있었다.

‘예쁘기도 해라. 어찌 저런 곳에 꽃이 피었을까?’

홀린 듯 철쭉꽃을 바라보던 수로부인이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누구 나를 위해 저 꽃을 꺾어다 줄 사람이 없나요?”

사람들의 눈길이 수로부인의 고운 손가락을 따라 절벽으로 향했다. 그 눈동자들은 금세 빛을 잃고 말았다.

“아름다운 꽃이군요. 하지만 저곳은 사람의 발자취가 이를 수 없는 곳이에요.”

“마음은 가지만 몸은 갈 수가 없어요.”

그때 한 노인이 늙은 암소를 몰고 가다가 그 광경을 보았다.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다가와 절을 하며 말했다.

“아름다운 분이여, 제 노래를 한번 들어주시렵니까?”

수로부인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이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붉은 바위 가에

    잡고 온 암소를 놓게 하시고,

    저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 향가 <헌화가(獻花歌)>


노래에 감동한 수로부인이 옥같이 고운 손길로 노인의 손을 부여잡고서 말했다.

“저를 위해 저 꽃을 꺾어다 주세요.”

노인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절벽으로 향했다. 노인은 깎아지른 험한 절벽을 한 발 한 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아주 위태로워 보기 힘들었다. 수로부인이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꼭 모았다.

마침내 노인은 절벽 끝에 있던 철쭉꽃을 꺾어 들고서 수로부인 앞에 섰다. 노인은 말없이 무릎을 꿇고서 부인의 손에 꽃을 바쳤다. 그런 다음 바위에 매어두었던 암소를 이끌고 유유히 사라져 갔다. 아름다운 수로부인이 그윽한 눈길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순정공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다. 이틀을 더 가다 보니 바닷가에 아름다운 정자가 나타났다. 일행은 점심을 먹기 위해 정자 앞에 멈추었다.

가마에서 내린 수로부인은 푸른 바다 수평선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푸른 바닷물 속에서 용이 불쑥 솟구쳐 나오더니 수로부인을 휘감고서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저런, 저런!”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너나없이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때 길을 지나던 노인이 그 광경을 보고서 사람들한테 말했다.

“옛말에 여러 사람의 말은 무쇠도 녹인다 했습니다. 바다에 사는 용이라도 여러 사람의 말은 무서워하게 마련이지요.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를 부르며 구하면 부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순정공은 급히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사람들은 막대기로 언덕을 치면서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아내를 빼앗으니 그 죄가 크도다.

  어서어서 수로를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너를 잡아 구워 먹으리라.   - <해가(海歌)>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계속 노래를 부르자 물속에서 용이 수로부인을 받들고 솟구쳐 나왔다. 용은 수로부인을 순정공한테 바치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부인, 얼마나 놀랐습니까? 다친 곳은 없나요?”

그러자 수로부인이 말했다.

“웬걸요. 바다 속은 별세계였답니다. 일곱 가지 보물로 장식한 궁전은 어찌 그리 화려하고, 음식은 또 어찌나 달고 향기롭던지요!”

말을 마치고 조용히 눈을 감는 수로부인의 옷에서 신비한 향내가 솔솔 흘러 나와 따사로운 봄바람을 타고서 은은히 퍼져 나갔다.

 

출처 : 賢雲齋 현운재
글쓴이 : 성고운(3)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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