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률사 역사여래좌상의 영험
백률사(栢栗寺)의 약사여래상(藥師如來像)의 영험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 제32대 효소왕(孝昭王) 2년(693)에 화랑 부예랑(花郞 夫禮郞)과 安祥이 부하를 이끌고 강원도 북쪽 元山 근처까지 여행했다가 적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그때 마침 신라왕실 보물을 보관하는 天尊庫에서 萬波息笛(만파식적)과 거문고가 없어져 국왕이 크게 근심하였다. 그리고 부예랑(夫禮郞) 부모는 아들의 무사귀환을 백률사(栢栗寺)의 약사여래상(藥師如來像)에게 기도하였다.
이들이 두달동안 성심성의로 기도한 덕분에 법당탁자위에 분실했던 피리와 거문고가 놓여 있고 잠시후 불상 뒤에서 행방불명됐던 부예랑(夫禮郞)과 安祥이 나오므로 부모는 감격하고 기뻐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그의 아들 부예랑(夫禮郞)은 "제가 적군에게 붙잡혀가서 추장집의 머슴이 되어 말을 먹이고 있었는데, 어느날 노승이 나타나 거문고와 피리를 들고 왔었습니다.
그 노승은 저에게 부모님이 보고 싶냐고 묻자 저는 하루 속히 임금님과 부모님을 뵙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 그 노승은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여 따라간 곳이 바닷가이었습니다.
노승은 피리를 두쪽으로 갈라 배두척을 만든 뒤 우리 두사람을 나누어 타게하고 노승은 거문고를 물에 띄워 타고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하고 그간의 겪었던 일을 설명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된 효소왕(孝昭王)은 백률사(栢栗寺)에 큰상을 내렸다고 하며 이 두 화랑(花郞)을 적지에서 구출한 노승은 다름아닌 백률사(栢栗寺) 약사여래상(藥師如來像)의 現身이었다고 한다.
출처 : 경주 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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