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이야기

[스크랩] 요석공주의 요瑤자는 하늘의 신녀神女 요희瑤姬를 뜻한다.

눈자라기 2008. 10. 25. 23:09

경주엔 무열왕의 딸 요석공주瑤石公主가 살고 있는 요석궁瑤石宮이 있었다. 궁 안에 칠성바위가 있기 때문에 요석궁으로 불렸고, 이 요석궁의 주인이 신라왕실의 공주였기 때문에 요석공주로 불렸다. 지금 요석궁은 남아 있지 않지만, 요석궁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서, 칠성바위가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바위야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나 일제에 의하여 칠성바위들이 조직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파괴된 점으로 보아서 이 칠성바위가 파괴되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또 설사 남아 있다고 해도 오랜 세월을 견디다 보니 땅 속에 묻혀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칠성바위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북두칠성 형상으로 깔아놓은 7개의 돌이고, 다른 하나는 촛대바위로 불리는 입석立石이다. 칠성바위는 고임돌의 원형이다. 고임돌을 고인돌이라고 한다.

고임돌이나 고인돌을 한자로 써보면 고임姑任돌이 되거나, 姑人돌이 된다. 고姑자는 마고에서 나온 문자임으로, 고임은 마고를 임금으로 높여 부른 말이 되고, 고인은 마고의 자손이나 백성이라는 뜻이 된다.

이러한 오묘한 의미가 요석瑤石공주의 요瑤자에 감추어져 있다. 요瑤자는 그 뜻이 북두칠성의 자루인 두병斗柄을 의미한다. 두병은 칠성바위 즉 입석으로 볼 수 있는 문자이다. 요석궁은 달리 칠성궁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요석공주를 칠성바위를 신체로 모시고 칠성님에게 제사지내던 여자제관의 지위에 있던 사람을 볼 수 있다.

요석공주의 요瑤자는 하늘의 신녀神女 요희瑤姬를 뜻한다.

요희는 남방의 신 염제와 곤륜산의 선녀인 서왕모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고 전해 온다. 그리고 그녀가 사는 곳을 요수瑤水라고 하였다. <지나신화支那神話>

이 지나인(支那人 주, 우리가 중국으로 부르고 있는 나라를 전세계 사람들은 지나라고 부른다. 지나는 원래 마고가 세운 나라인 마고지나에서 떨어져 나온 나라라는 뜻이다.)의 신화에는 이 신화를 태어나게 한 원형신화가 있다. 지금 그 원형신화는 사라져 없지만, 위에 든 <지나신화>에서 복원해 낼 수 있다. 지나신화支那神話에 나오는 몇 개의 키워드를 해석해 보면 원형신화가 복원되는 것이다.

남방의 신으로 불리는 염제의 원형은 지구상에서 최초의 적제로 불린 풍이 출신의 한인천제이다. 한인천제는 오이족 출신의 항영姮英과 혼인하여 한인천제의 비가 되었다. 곤륜산은 천상으로 불리는 산이다. 칠성산이라는 의미가 있다. 요수瑤水는 요지瑤池의 물이다. 요지는 지금 천산天山에 있는 천지天池의 옛 이름이다. 이렇게 키워드를 바꾸고 남는 것이 서왕모이다. 서왕모는 천지에 있는 사당에 모신 금모낭낭金母娘娘이다. 금모낭낭의 원형은 마고이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한인천제의 비인 항영으로 보기로 한다.

이렇게 <지나신화>의 키워드를 모두 한인과 항영으로 바꾸고 보면 진짜 한인과 항영신화의 원형이 되살아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요석공주설화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요석공주는 꽃다운 나이에 백제와의 싸움에서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다. 과부 혼자서 하인을 데리고 살고 있었다. 당시에 요석공주의 신랑으로 걸 맞는 남자로 원효元曉가 있었다.

원효의 이름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먼동이 틀 때’를 뜻하는 이름이다. 원효라는 이름이 궁합이 맞는 이름이 요석이라는 이름이다. 원효를 요석에 맞추어 보면, ‘칠성바위 너머로 동터오는 새벽’이라는 의미가 생성된다. 신선하고도 멋있는 이름이다. 두 사람의 이름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가 두 사람을 가깝게 해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원효의 어머니가 꿈을 꾸니 유성流星이 품속으로 들어왔다. 그 후 태기가 있어 해산하려 할 때 오색구름이 땅을 덮었다. 그는 해산할 때가 되어 밤나무 밑에서 태어났다.

밤나무를 율목栗木인데, 밤나무에는 2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밤(夜)이라는 의미이고, 둘째는 서쪽(西)에 서있는 나무(木)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그가 밤에 서쪽에서 태어났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서쪽에서 보면, 북두칠성 즉 요수瑤宿가 남쪽으로 지는 것이 보인다. 원효가 태어난 곳이 경주가 아님을 유추할 수 있다. 경주보다 훨씬 서쪽에서 태어났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그가 요석공주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를 부인으로 차지하기 전까지 그는 경주에 있지 못하고 경주의 서쪽 어디엔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리가 성립한다. 당시의 사람들이 신분과 서열에 의하여 경주 안에서 살 수 있고 살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이러한 이유로 신분과 서열이 낮은 그가 경주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는 당시에 천재형의 젊은이였다. 천재로 경주 안에 소문이 나 있는 말하자면 오늘날의 스타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가 경주로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은 승려가 되는 길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경주에 입성하여 남산에 있는 어느 절에서 기거했다.

그는 가끔 경주에 와서 풍문으로 요석공주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그녀가 당시에 최고의 가문인 무열왕의 누이동생이고, 장래가 촉망되던 남편과 결혼하여 살다가 백제와의 숨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요석공주를 차지할 때가 이때라고 생각하고 첩보전에서나 써먹을 수 있는 정보를 흘린 펼친다.


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
누가 자루 헐거워 물에 빠진 도끼를 건져줄 것인가
내가 하늘기둥을 베어오겠네


당시에 이런 노래를 지어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적수공권赤手空拳에 혈혈단신孑孑單身인 원효 뿐이었다. 만약 권력을 가진 명문가의 젊은이가 이런 노래를 지어 불렀다가는 조선시대에 시 한수로 모함을 당하여 처형당한 남이장군처럼 반역자로 몰려 사형당하기 딱 알맞은 노래였다.

도끼는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이고, 천주는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므로 임금을 상징하는 문자이다. 그러므로 해석하기에 따라선 반역을 부추기는 노래로 오인되어, 본인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는 유언비어에 속하는 노래였다.

또 다른 의미는 신라사람들의 자유분방自由奔放한 사회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노래라는 것이다. 원효는 승려답지 않게 요석공주에게 노골적으로 성적인 구애를 하고 있다. 헐거워진 도끼는 그의 남근을 상징하고, 몰沒은 그녀와의 교접을 상징하고, 천주는 그 결과로 태어나는 아들을 상징한다. 따라서 “당신이 나와 혼인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무열왕은 이 노래를 듣고 원효가 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것을 알았다. 요석공주의 요瑤가 밤을 의미하고 효曉가 새벽을 의미하므로 다음에 그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들을 조朝로 보고, 유언비어의 주범이 원효임을 간파했을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근거로 하여 무열왕이 원효가 요석궁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락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원효는 남산에서 내려와 요석궁에서 멀지 않은 곳에 놓인 다리인 문천교蚊川橋로 다가갔다.

문천교蚊川校도 원효를 은유한다. 문蚊이 모기를 의미하는 문자라, 그곳이 모기가 많은 내로 풀이 할 수 있지만, 모기가 인체에 침을 꽂는다는 뜻에서 원효의 가부柯斧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고, 또한 천川은 요석공주의 요수瑤水로 볼 수 있다.

그는 다리를 건너다가 다리 중간에서 여석궁에서 나온 관리와 마주쳤다. 계획적으로 관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관리와 마주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리를 비껴주려는 듯 비껴서다가 물에 빠졌다. 관리는 물에서 원효를 꺼내주고 옷을 말릴 수 있게 요석궁으로 데리고 갔다. 물에 빠진 원효를 손님으로 맞게 된 요석공주는 원효가 이미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곧 부부가 되었다.

그들이 혼인하여 낳은 아들이 설총薛聰이었다. 그는 중이 되어 아무 쓸모없이 되어버린 가부를 잘 다듬어 하늘의 기둥을 찍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원효는 승복을 벗고 백성들이 입는 속복俗服으로 갈아입고 스스로 소성거사小姓居師라고 하였다. 그는 요석궁에서 나와 욕심을 버리고 아무 거리낌 없이 살며 무애無碍의 경지에 들어갔다. 그는 소요산逍遙山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원효대元曉臺라는 이름이 생겼다. 요석공주도 설총을 데리고 소요산에 들어가 조그마한 별궁을 짓고 살았다. 지금 그곳을 요석궁지瑤石宮趾라고 한다.

그의 아들 설총은 그의 노래대로 후에 나라를 떠받치는 천주가 되었다. 그는 신라 학자의 조종祖宗이 된 것이다.

여기에서 천주에 대하여 잠깐 살펴보기로 한다. <지나신화>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하늘엔 전욱顓頊이라는 상제上帝가 있었다. 천제 밑에 수신水神 공공共工이 있었다. 어느 날 공공은 천제의 자리를 넘보고 반란을 일으켰다. 천제의 군대와 공공의 군대는 하늘에서 싸우다가 땅으로 내려와 서북방에 불주산不周山 기슭에서 싸우게 되었다. 이 산이 천주天柱였다. 상제 전욱고양은 이 천주에 의지하여 세상을 다스렸다. 공공은 상제 전욱을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이 천주를 무너뜨렸다. 그러자 천지가 개벽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온통 세상이 뒤바뀌고 말았다.

이 신화도 원래 동이의 신화였지만, 지나족이 제멋대로 변조한 것이다.

전욱고양은 전욱이라는 곳을 사스리던 고양이라는 분이었다. 전욱은 그가 산에서 산사람들을 다스리는 자리에 있음을 나타내는 문자이다. 말하자면 신선의 우두머리로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산에 의지하여 세상을 다스렸다. 그 산을 불주산이라고 하였다. 불주산은 ‘골고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산’이라는 뜻이지만, 음을 그대로 보면 ‘불을 주는 산’이 된다. 그러므로 불을 채화하던 산으로 볼 수 있다. 불이 곳곳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그에게 공공이라는 반역자가 나타나서 반란을 일으킨다. 공공은 지금의 국무총리급에 해당하는 직책이다. 말하자면 제2인자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 부분은 이 신화가 전욱고양의 후대에 만들어진 신화로 의심받게 하는 대목이다. 전욱고양 대에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반란은 그의 후대에 가서 일어났다.

당시엔 아버지 소전少典에게서 태어난 배다른 형제 유망과 황제 두 집안이 번가라가며 제위를 세습하고 있었다. 전욱고양은 유망의 집안에서 태어나 그의 제위를 황제집안의 제곡고신에게 넘겨주었다. 다음에 제곡고신은 전욱고양의 아들 중여곤에게 제위를 넘겨주어야 하였다. 그러나 제곡고신은 중여곤에게 제위를 넘겨주지 않고 그의 아들 지에게 제위를 넘겨주었다. 이것이 바로 불주산의 반란이다.

이 신화에서 수신 공공에 해당하는 사람이 제곡고신이다. 그가 공공의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제2인자로서 전욱고양으로부터 제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당연히 제곡고신 당시에 공공의 지위에 있던 중여곤에게 제위를 넘겨주어야 하였다. 그가 중여곤에게 제위를 넘겨주지 않음으로써 두 집안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음을 이 신화가 전하고 있다.

천주가 무너졌다는 것은 전욱고양이 반역자 제곡고신에게 패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고구려 고분 삼실총 현실에는 역사도力士圖로 알려진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불주산신화를 그린 것으로 이 역사는 전욱고양을 의미한다. 그가 떠받치고 있는 천장이 하늘이다. 그를 고양高陽이라고 했는데, 높이 뜬 해라는 뜻이다. 그는 고구려를 세운 고씨의 조상이 된다. 고양의 종족아이콘은 양羊이었다. 그러므로 해와 양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그가 떠받치고 있는 하늘에는 용으로 보이는 뱀이 있다. 이 뱀은 그의 조상이 풍이風夷를 의미한다. 풍이가 뱀을 종족의 아이콘으로 썼던 것이다. 풍이가 북방에 정착했음을 나타낸다. 전욱고양의 몸에서 뻗어 나오는 기氣는 인기人氣를 나타내는 것으로 인의 신성함을 뜻한다. 이미 그 시대에 기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원효는 그가 쓴 시에서 천주가 누구임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전욱고양을 천주로 보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그가 낳게 될 아들 설총을 천주에 비유하였다. 불주산신화를 분석하면 이렇게 동이신화임이 밝혀진다.

출처 : 원효대사와요석
글쓴이 : 요석보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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