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추석과 송편
더도말고 덜도말고 한가위 송편만 같아라
음력 8월 보름날은 한가위, 추석 (秋夕) 또는 가배일(嘉俳日)이라 하여 정월 명절과 더불어
가장 큰 명절이다. 농삿일도 거의 끝나고 햅쌀과 햇과일이 나오기 시작하며 하늘은 높고
날씨는 쾌청하여 옛부터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는 말이 있다.
이 날엔 햅쌀로 밥도 짓고 송편도 하고 신도주(新稻酒)라고 하는 술도 빚어 조상께 수확의
기쁨을 추석 차례로써 알린다. 추석날 남자들은 씨름판에서 힘을 겨루고,
여자들은 널뛰기를 한다. 저녁에는 식구가 평상에 앉아 둥근 달을 보며 담소하고,
남쪽 지방에선 강강술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이런 추석의 대표적인 음식이 송편이다.
언제, 왜 먹었나
송편이 언제 생겼는지는 정확하지는 않다. 다만 중국 후위(後魏)때 가사협이 편찬한
〈제민요술(齊民要術, 530∼550년)〉 의 종과열, 〈목은집(牧隱集)〉의 차기장떡이
송편으로 추정되는 만큼 고려시대엔 일반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은 추석의 대표적인 절기음식이지만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예전엔 중화절
(음력 2월1일)에도 빚었다. 정월 대보름 대문간 장대에 매달았던 쌀을 풀어 만든 뒤
머슴들에게 나이 수대로 나눠주고 한해 농사에 힘써 줄 것을 부탁하는 특식이었다.
송편을 백설기 수수 팥 단지와 함께 돌상에 올리는 것은 아기의 머리가 송편 속처럼
꽉 차 명철하게 자라기를 비는 마음에서다. 송편은 소에 따라 팥송편, 깨송편, 콩송편,
대추송편, 밤송편 등으로 나뉜다. 가장 먼저 수확하는 햅쌀로 빚은 것은 오려송편이라
해서 차례 상에 올린다. 모양도 지방마다 달라 서울은 조개, 강원도와 황해도는
손으로 꼭 눌러 손가락자국을 내 만두처럼 만든다. 크기는 서울 것이 한입에 들어갈 만큼
앙증맞고 황해도, 경상도, 강원도 송편은 두툼하다.
맛에 취하고 향에 취하고 추석 때의 송편은 올벼로 찧은 오려 쌀로 만들어서
오려송편이라고 한다. 쌀가루에 쑥, 송기, 치자로 맛과 색을 달리하여 끓는 물로
익반죽해서 오래도록 치대어 마르지 않게 젖은 보자기로 덮어둔다.
송편소로 거피팥, 햇녹두, 청대콩, 꿀이나 설탕과 소금으로 맛을 낸 깨 등이 있다.
송편 반죽을 밤톨만하게 떼어 가운데 우묵하게 우물을 파서 소를 넣고 빚는다.
시루에 솔잎을 송편 사이사이에 두어 쪄낸다. 모양은 지방마다 달라 북쪽은 대체로 크고,
서울은 작게 빚는다. 조개 모양 또는 손자국을 내서 창해도, 강원도 지방은 소박하게 빚는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쑥 대신 모시 잎을 뜯어 삶아 섞는다. 쌀 대신 감자 녹말, 고구마 녹말로
빚기도 한다. 송편을 쪄내어 찬물에 재빨리 넣었다가 건져 참기름을 바르는데 오래
두었다 먹거나 멀리 가져갈 것은 물에 씻지 말고, 솔잎이 붙은 채 바구니에 담아둔다.
정초에 절편이나 흰떡을 하듯이 친 떡으로 송편을 빚으면 아주 맛나다.
추석전에 뜯어 깨끗이 손질해둔 솔잎을 갈피갈피 놓고 쪄내면 익반죽한 멥쌀가루의
쫄깃쫄깃함에 다양한 고명의 맛과 은은한 솔내음이 어우러져 먹는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과학보다 더 깊은 지혜
송편을 찔 때는 솔잎을 먼저 시루에 깔아 시루 구멍을 덮고 그 위에 송편을 한줄 놓는다.
다시 솔잎 한 줄 송편 한 줄 하면서 차곡차곡 놓는다. 아마도 송편의 ‘송’자가 소나무
‘송(松)’인 이유가 솔잎을 넣고 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향긋한 솔잎 향을 배게 해서
맛깔을 더해보려는 지혜쯤으로 생각돼왔던 솔잎 송편이 기실 더 깊은 과학에 바탕하고
있었다는 것이 최근에야 밝혀졌다.
식물은 다른 미생물로부터 자기 몸을 방어하기 위 해 여러 가지 살균물질을 발산하는데,
이를 통칭해 피톤치드(phytoncide)라고 한다. 솔잎으로부터 피톤치드를 빨아들인 송편에는
세균이 범접하지 못해 오래도록 부패하지 않고 먹을 수 있었으니, 실로 과학적인 원리를 잘
이용한 것이 솔잎 송편이었던 것이다.
숲 속의 많은 나무들이 저마다 피톤치드를 내는데, 그 중에서 소나무는 보통나무보다
10배 정도나 강하게 발산한다고 한다. 송편 시루에 다른 잎이 아닌 소나무 잎이 들어간
이유를 알 것이다.
옛부터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배우자가 예쁘고, 볼품없이 빚으면 신랑신부 될 사람의 미모도
볼품이 없다는 어른들의 말이 있다. 송편 조금이야 하면서 쉽사리 사다 먹는 집이 많지만,
쌀가루와 소 만 몇 가지 준비하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재미있게 빚을 수 있는 명절 떡으로
송편 만한 게 없다. 꼭 옛날 방식이 아니더라도 각자 개성에 맞게 송편을 빚을 수 있다.
콩과 호박 등 천연 재료를 쌀가루에 섞으면 연두, 분홍, 노랑 포근하고 아름다운 떡을
빚을 수 있다.
올 추석에는 가족끼리 둘러앉아 색색깔 예쁜 송편을 빚고 솜씨를 뽐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