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방문기 (1) - 박연폭포
개성에 간다는 것에 많이 망설였다. 계획할 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요즘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다음번으로 미뤄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다.
걱정과 불안을 모두 안고 떠났지만, 한편으로 설레는 마음도 감출 수 없었다.
개성은 도라산역에서 통관을 마치고 들어가는 데 한 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북한 안내원이 버스에 동행하는데,
첫 번째 목적지인 박연폭포까지의 길을 설명하는 선생님과
가장 뒷자리 앉는 안내원 선생님까지 모두 두 명이다.
(들어가기전에 우선 몇 가지 주의를 받았는데,
남측과 북측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
북측 비하발언을 하지 말 것,
각 정치상황에 관한 언급을 하지 말 것,
서로의 호칭은 '선생님'으로 할 것 등이었다.)
가는 동안 소학교와, 주변도시의 풍경, 특히 개성공단을 지날 때는 어떤 회사가 들어와 있는지, 어떤 계발이 예정되어 있는지도 자세하게 소개했다.
그리고 목적지인 박연폭포의 유래, 송도 삼절에 관한 설명을 해 주고
구성지게 노래도 한 곡조씩 뽑아준다.
박연폭포 입구에 있는 큰 석문.
곳곳에 이런 석문이 새겨져 있는데 모두 짙은 빨간색으로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던 것들이기도 하다.
이곳은 식사를 위한 공간.
북한의 국화인 목란. 하얀꽃이 아주 예쁘게 피어 있었다.
송도삼절이란
황진이, 화담 서경덕, 박연폭포를 이르는 말이다.
개성의 옛 이름인 송도에서 세 가지 유명한 것인데,
황진이는 조선시대의 가장 유명한 기생으로 뛰어난 한시를 가지고 있다.
여러 문인들을 유혹하여 그녀가 유혹하지 못하는 자가 없었다고 하는데
서경덕은 예외였다.
진이는 밤을 타서 수차례 유혹하였으나 화담은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자 진이가 포기하고 사람들에게 "늙은 지족 스님의 삼십 년 면벽수도 나에게 무너졌는데,
오직 화담선생만은 어지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으니, 참으로 성인이다." 하였다.
화담 서경덕이 지은 시조에,
마음이 어린 후 ㅣ니 하난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에 어내 님 오리마난,
지난 닙 부난 바람에 행여 ?가 하노라.
(마음이 어리석은 뒤이니 하는 일이 모두 어리석다
첩첩이 구름 쌓인 산에 어느 님에 오랴만은
지나가는 잎과 부는 바람 소리에 행여 님인가 하노라)
라는 작품이 있다.
이 시조는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를 서화담이 황진이를 그리워하며 지은 작품이라 한다.
그에 진이가 화답하기를,
내 언제 무신하야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삼경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난 닙 소래야 낸들 어이 하리오
(내가 언제 신의가 없어서 님을 언제 속였길래
달이 지는 한밤중에 온 자취가 전혀 없구나
가을 바람에 지나가는 잎 소리를 나인들 어찌 하리오)
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온다.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일 가능성이 크다.
(http://blog.daum.net/son13601)
가장 좋아하는 진이의 시조는 솔직하면서도 수사법이 뛰어난
동지섯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춘풍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하는 시조이다.
황진이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곳에서 전해지는데,
황진이의 묘소를 찾아 제배를 올린 일이
사대부가 할 짓이 못된다 하여 파직당한 임제의 이야기이다.
그가 황진이의 묘소에서 읊은 시조는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엇는다
홍안을 어듸 두고 백골만 뭇쳤는다
잔 잡아 권하리 업스니 글을 슬허 하노라
너무 늦게 찾아와 잔도 권할 수 없으니 슬프다는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산을 좋아하지만, 요즘 시간 내서 가 본 일이 없었는데,
오랫만에 자연과 마주한, 북한의 자연과 접한 경험은
꽁꽁 숨겨놓은 보따리를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황진이가 머릿채로 묵을 묻혀서 바위에 새겼다고 전해지는 것이다.
이태백의 시를 옮겨적었다고 전해진다.
'비류직하삼천척 의시은하락구천'
(나는 듯 흘러내려 삼천척을 떨어지니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져내리는 듯 하구나)
이백의 시
'여산폭포를 바라보며' 중 두 구절이 새겨 있다.
'백시황필양웅재'
(이백 시와 진이의 필체 다 뛰어나도다)로 시작되는 시도 적혀 있다.
(http://www.blog.daum.net/sk3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