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봉사 철감선사탑(雙峰寺澈鑒禪師塔)
- 전남 화순군 이양면 증리 195-1 쌍봉사
- 통일신라시대
철감선사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경문왕대에 화순지역에 내려와 절을 짓게 되는데, ‘쌍봉’인 그의 호를 따서 ‘쌍봉사’라 이름하였다. 경문왕 8년(868) 71세로 이 절에서 입적하였으며, 왕이 ‘철감’이라는 시호를 내리며 탑과 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부도는 통일신라때 기본양식인 팔각 원당형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하대석, 중대석과 상대석, 몸돌, 지붕돌로 모두 4매의 석재로 이루어졌다.
2단으로된 하대석 8면에는 사자가 한마리씩 생생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제 뒷다리를 물고 있는등 다양한 형상이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상대석 또한 2단으로 아래에는 연꽃을 두르고, 상부의 각 면에는 나팔, 장구등 저마다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가릉빈가(伽陵頻迦)를 하나씩 새겨 넣었다.
몸돌의 앞뒤면에는 자물쇠달린 문이 새겨져 있으며, 양 옆에 비천상과 그 사이에 조각된 4천왕상의 모습이 생생하다. 몸돌에서 부터는 목조 건축의 모습을 뚜렷이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각 귀퉁이에는 배흘림 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특히 지붕돌에 표현된 기와지붕의 모습이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기와골을 따라 낙수면이 흘러내린 처마 끝에는 막새기와가 표현되어 있는데, 그 하나하나에 모두 8엽 연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처마 밑으로도 실제 목조 건물처럼 서까래까지 표현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각각 향로, 비천상, 꽃무늬등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위의 상륜부는 모두 소실되어 사라졌으며 부분부분 깨어져 나간 지붕돌 추녀의 모습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 외의 보존상태는 좋은 편으로 하나하나 석재를 다듬어낸 세부적인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정밀하고도 아름다우며, 전체적으로 빈틈이 없는 짜임새와 균형감있는 모습으로 당대 최고의 부도로 손꼽힌다.
네개의 단단한 화강암 덩어리를 한번의 실수도 없이 정으로 깍아 내었을 과정을 상상하면 이미 기술이라고 할만한 경지는 넘어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높이는 2.3미터, 국보 제57호로 지정되었다.
기와지붕 처마끝 낙수면에 막새기와를 처마 아래로 서까래까지 표현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향로, 비천상, 꽃무늬등이 새겨져 있다.
처마 끝 막새기와에 8엽 연꽃무늬를 하나하나 새겨 넣었다.
몸돌 각 모서리에는 배흘림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각 면에는 비천상과 4천왕상이,
상대석에는 가릉빈가의 모습이 매우 생생하다.
몸돌에 새겨진 사천왕상의 정교한 모습
몸돌 하부는 연꽃을 두르고, 상부에는 나팔, 장구등 저마다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가릉빈가(伽陵頻迦)를 하나씩 새겨 넣었다
하대석 8면에는 사자가 한마리씩 조각되어 있다. 제 뒷다리를 물고 있는등 다양한 형상인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통일신라의 돌 세공 수준은 최고였지만 그 정점을 보여주는 부도라 할 만하다.
[출처] 쌍봉사 철감선사부도|작성자 한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