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

각궁

눈자라기 2008. 4. 22. 13:49

 

종    목

 

 

 

 

 

 

 

 

 

 

 

 

 

 

 

 

 

 

 

 

 

 

 

 

 

 

 

 

 

 

 

 

 

 

 

 

 

 

 

 

 

 

 

 

 

 

 

 

 

중요민속자료  제35호

명     칭 각궁(角弓)
분     류 유물 / 과학기술/ 무기병기류/ 무기무구류
수량/면적 일괄
지 정 일 1976.12.31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대한궁도협회
관 리 자 대한궁도협회
일반설명 | 전문설명
조선시대 고종(재위 1863∼1907)이 사용하던 활이라고 전하며, 당시의 활 만드는 장인 장문환이 제작하였다고 한다. 활의 전체길이는 124㎝이고, 오금너비는 3㎝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각궁은 명성이 높고 독특한 자료로 만들었다. 글자 그대로 쇠뿔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한국의 대나무, 물소뿔, 쇠심, 구지뽕나무, 참나무, 화피의 6가지 재료로 구성된다.

이 각궁은 벚나무 껍질로 만든 화피 위에 채색을 하였으며, 시위고리를 거는 새코머리는 가죽으로 감싸서 3가지 색의 천으로 발랐고 그 밑에는 아(亞)자 무늬를 새긴 검정색 종이로 감쌌다. 특히 이 활의 검은색 양 단에 각각 ‘호미(虎尾)’ 및 ‘주연(珠淵)’이라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어 특색을 이루고 있는데, ‘주연’이 고종황제의 호이므로 고종의 활이라는 내력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나라는 활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각궁이 언제부터 널리 보급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함흥 선원전에 태조 이성계의 유물로서 이 각궁이 보관되어 있었고, 또 경국대전에 각궁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미 각궁의 꾸밈새가 정형화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종    목 중요민속자료  제35호
명     칭 각궁(角弓)
분     류 유물 / 과학기술/ 무기병기류/ 무기무구류
수량/면적 일괄
지 정 일 1976.12.31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대한궁도협회
관 리 자 대한궁도협회
일반설명 | 전문설명
조선시대 고종(재위 1863∼1907)이 사용하던 활이라고 전하며, 당시의 활 만드는 장인 장문환이 제작하였다고 한다. 활의 전체길이는 124㎝이고, 오금너비는 3㎝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각궁은 명성이 높고 독특한 자료로 만들었다. 글자 그대로 쇠뿔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한국의 대나무, 물소뿔, 쇠심, 구지뽕나무, 참나무, 화피의 6가지 재료로 구성된다.

이 각궁은 벚나무 껍질로 만든 화피 위에 채색을 하였으며, 시위고리를 거는 새코머리는 가죽으로 감싸서 3가지 색의 천으로 발랐고 그 밑에는 아(亞)자 무늬를 새긴 검정색 종이로 감쌌다. 특히 이 활의 검은색 양 단에 각각 ‘호미(虎尾)’ 및 ‘주연(珠淵)’이라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어 특색을 이루고 있는데, ‘주연’이 고종황제의 호이므로 고종의 활이라는 내력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나라는 활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각궁이 언제부터 널리 보급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함흥 선원전에 태조 이성계의 유물로서 이 각궁이 보관되어 있었고, 또 경국대전에 각궁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미 각궁의 꾸밈새가 정형화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의>

나무 또는 쇠를 반달모양으로 휘어서 두 끝에 시위를 걸고 화살을 걸어 당겼다 놓으면 줄의 탄력을 받아 화살이 튀어나가는 무기.



<발달과정/역사>

우리나라에서는 중석기시대 세석기 중 화살촉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활과 화살이 원시시대부터 수렵도구로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삼국지(三國志)』「위지(魏志)」「동이전(東夷傳)」에는 낙랑단궁(樂浪檀弓)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데 이는 우리나라 활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며, 고구려 벽화 고분의 묘사를 통해서는 고대 활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고구려에서 사용한 활은 맥궁(貊弓), 단궁(檀弓), 경궁(勁弓) 등으로 불렸고 그 중 맥궁은 그 우수성이 일찍이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각궁(角弓)이란 소나 양의 뿔로 장식한 활로, 주로 수우각(水牛角), 즉 물소뿔을 사용하기 때문에 나온 명칭이다. 후궁(?弓) 또는 장궁(長弓)이라고도 하며, 국궁(國弓)이라고도 부른다. 삼국시대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것으로 고구려의 맥궁이 바로 각궁이었으며, 백제와 신라 역시 각궁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의 활은 각궁을 중심으로 제작, 사용되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대나무와 뿔로 만들어진 각궁이다. 전체적으로 원형에 가깝게 둥글게 구부려져 있으며 손잡이 부분에는 뿔이, 겉면에는 장식을 위한 화피(樺皮)가 부착되어 있다. 양 끝부분은 직각에 가깝게 꺾여 있으며, 시위를 걸 수 있도록 마름모꼴로 움푹 패여 있다. 그 위에는 쇠로 만든 장식이 덮어 씌워져 있는데, 산화되어 짙은 고동색을 띄고 있다. 표면색은 활의 안쪽은 옅은 녹색을, 화피 부분은 진한 고동색을 띈다. 이 각궁은 길이 2m미만의 단궁(短弓)으로, 소재도 대나무, 뽕나무, 쇠심줄, 뿔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어 복합궁(複合弓)으로 분류된다. 화살을 대는 활의 중앙 부분만이 폭이 좁아지며 단면이 원통형에 가깝게 다듬어져 있고, 그 이외의 부분은 모두 납작하게 다듬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매우 오래되고 건조되어있어, 나무 및 화피의 결이 모두 일어나 있다.



<참고문헌>

부산복천박물관, 『古代 戰士-고대전사와 무기』, 1999.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의 문화재』5, 2003.

정영호 감수, 『그림과 명칭으로 보는 한국의 문화유산』, (주)시공테크, 1999.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25,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