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율 있는 글/古展詩調

맹종지효, 왕상지효

눈자라기 2008. 3. 30. 23:34

왕상(王祥)의 잉어 잡고 맹종(孟宗)의 죽순 꺽어 
검던 머리 희도록 노래자(老來者)의 옷을 입고 
일생에 양지성효(養志誠孝)를 증자(曾子)같이 하리라

지은이 : 박인로

 

 

왕상(王祥)의 잉어 - 옛날 중국의 왕상이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그 어머니가 앓으면서
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그래서 왕상이 옷을 벗고 강의 얼음을 깨고 들어가려 하였더니, 두 마리의 잉어가 뛰어나왔다고 한다
.

맹종(孟宗)의 죽순(竹筍) -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맹종은 늙은 어머니가 겨울에 죽순을 먹고 싶다고 하니 대숲에서 슬피 울며 탄식하니, 죽순이 겨울에도 솟아 나왔다고 한다.

위의 두 효자의 이야기는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을 새삼 깨닫게 하는 고사(古事)이다.

노래자(老來子)의 옷 - 칠순(七旬)의 나이에도 때때옷을 입고 재롱을 부리면서 늙으신
부모님을 즐겁게 했다는 효자(孝子) 노래자의 이야기
.

양지성효(養志誠孝) - 어버이를 잘 봉양하여 그 뜻을 기리는 정성스러운 효성. 공자
(孔子)의 수제자인 증자(曾子)는 효자로서 유명하다.

 

고전 예기(禮記)에 보면 증자가 제자들에게 효에는 세가지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큰 효는 어버이를 존중하는 것이요, 그 다음은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며, 부모 봉양은 맨 아랫 단계이다

 

한 번은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가려고 하는데 아이가 따라가려고 치맛자락에 매달려 울며 보챘다. 시달리다 못한 아내가 아이를 달랬다.
"
얘야, 얼른 돌아가거라. 엄마가 돌아올 때 돼지 잡아줄게."

그제서야 아이는 겨우 울음을 그쳤다.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오니 증자가 돼지를 묶어 놓고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을 들고 막 돼지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아내는 놀라 급히 뛰어들어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당신 미쳤어요? 아이가 하도 울고 보채길래 잠시 달래려고 잠시 속인 걸 가지고."

이때 증자는 엄숙하게 말했다.
어떻게 아이를 속일 수 있단 말이오? 아이들이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부모만 보고 배우는 것이오. 지금 당신이 이를 속이는 것은 장차 아이에게 남을 속이도록 가르치는 것이오.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속이면 아이는 어머니를 믿지 못하게 될 것이오. 그러면 무슨 가정교육이 되겠소?

말을 마친 증자는 돼지의 멱을 따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아내를 내�고 말았다. 그 이유인즉 아버지께서 삶은 배를 좋아하셨는데 아내가 배를 잘못 삶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증자는 자기 집에 찾아 오신 아버지의 친구에게 대접해 드릴 음식이 없어 이웃집에 가서 음식을 얻어다가 손님을 대접함으로 자기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렸다.

다 먹고 난 뒤에 아버지가 그 음식이 더 남아 있느냐고 물으면 언제나

", 더 남아 있습니다. "

라고 대답하였다.

 

가마귀 열 두 소리 사람마다 꾸짖어도 
그 삿기 밥을 물어 그 어미를 먹이나니 
아마도 조중증자(鳥中曾子)는 가마귄가 하노라. 
지은이 : 김수장(金壽長)

 

그런데 그 증자의 아들 원()은 자기 부모님께 효도를 함에 있어서 자기 아버지의 친구가 찾아 오셨는데 집에 대접할 음식을 두고도 이 다음에 자기 아버지에게 한 번 더 드리려고 음식을 아껴서 오신 손님에게 대접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들 두 부자는 서로 상반된 다른 일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둘 다 자기 아버지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웃집에 가서 음식을 얻어다가 손님을 대접함으로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린 것도 효도요

음식을 남겨 두었다가 자기 아버지만 더 잘 공양하려고 한 것도 아버지를 잘 받들어 섬길려는 뜻에서 나온 행동이기 때문이다. 

 

꿈에 증자(曾子)께 뵈워 사친도(事親道)를 묻자온대 
증자 왈 오호라 소자(小子)야 들어스라 
사친이 기유타재(豈有他哉)리오 경지이이(敬之而已)하시니라.

광조 (趙光祖)


증자는 죽음에 임해서 제자들에게 자기 손과 발을 펴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자기의
몸에 아무런 손상도 없음을 확인한 그는 기뻐하면서

"나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뚱이와 머리털, 피부를 손상 하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하고 살아 왔는데 이제 곧 죽을 것이니 그 걱정은 덜게 되었다. "

고 말했다. 증자가 공자의 수많은 제자들 가운데 가장 존경을 받게 된 것은 그의 지극한 효도도 효도지만 그가 스승의 가르침을 성실히 따르고 실천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증자에 버금가는 효자로 널리 회자되는 민자건의 효행을 잠깐 살펴보자.

민자건이 아직 어렸을 때 아버지가 계모와 재혼하여 삼형제 즉 이복동생들을 낳았다.
그런데 어느 겨울에, 민자건이가 자기 아버지의 수레를 끌고 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너무나 심하게 벌벌 떠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긴 아버지가 수레를 세우고 옷을
만져보니, 솜을 넣어 줬다는 것이 솜이 아니라 갈대 꽃을 넣어 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바람이 술술 들어오니 벌벌 떨 수 밖에. 얼마나 화가 나고 괘씸했던지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계모를 내 �으려고 했다
.

그러자 민자건이가 아버지를 붙잡고 빌었다.

 

모재(母在)에 일자한(一子寒)이요- 엄마가 집에 있을 것 같으면 나 혼자서 벌벌 떨게
되지만, 모거(母去)에 삼자한(三子寒)이라 - 엄마가 잡 밖에 나갈 것 같으면 세 아들이
벌벌 떨게 됩니다.

 

그러니 계모를 내쫓지 말라고 애원하였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계모도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민자건이를 친 자식들보다 더 사랑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