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살롱
[스크랩] 조선시대의 시계 이야기 | [역사자료]
눈자라기
2007. 12. 24. 17:02
우리조상들은 옛날부터 시간의 흐름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시계를 만들어 사용해 왔다. 시간을 재기 위해서는 자연에서 쉽게 접하는 여러가지 현상이나 사물의 일정한 동작을 이해하는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조상들은 물이나 모래, 천체가 흘러가는 속도를 재서 시간의 흐름을 가름했다.
흘러가는 것으로는 해가 대표적이다. 아침에 동쪽에서 떠서 저녁에 서쪽으로 진다. 해의 움직임을 보면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용해 만든 시계가 해시계, 즉 '일구'또는 '일귀'이다. 또한 흐르는 것으로는 물이 있다. 물은 다루기도 쉽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는데 응용되었다. 이것이 물시계이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 '앙부일구'라는 해시계를, '자격루'라는 물시계를 만들어 사용했다. 18세기쯤에는 톱니바퀴를 이용해 일정한 속도로 기계가 돌아가게 하는 식의 원리를 이용해 만든 '혼천시계'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물시계 '자격루'
세종때의 과학자인 장영실이 처음 만들었다.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는 현존하지 않는다. 다만 덕수궁에 현존하는 것으로서 중종때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만원짜리 지폐에도 그려져있다.
자격루는 맨 위에 있는 물통에서 두번째 물통으로 물이 흘러들고, 다시 일정한 속도로 가늘고 긴 아래의 물통으로 흘러 들어간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정한 속도로 물통속의 나무 막대가 떠 오르고 정해진 자리에 올라가면 쇠구슬이 옆의 홈통으로 굴러 내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흘러 들어간 쇠구슬은 필요한 만큼 종이나 징, 북을 울리게 한다. 마치 지금의 알람 시계와 같이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다.
해시계 '앙부일구'
세종때 만들어진 4가지 해시계 중 대표적인 해시계가 '앙부일구(오목해시계)이다. 오목한 해시계의 한가운데에는 그림자를 만들어주는 바늘이 있고 북극을 가리키게 되어있다. 해시계는 위도에 따라 그림자의 길이가 달라서 사용하는 장소에 따라 맞추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사용한 것이라면 '북극출지(北極出地)37도20분'이라고 쓰여져 있다. 앙부일구에는 세로줄 12개와 가로줄 13개가 그어져 있다. 가로줄은 24절기를 표시한다. 해시계는 물시계 처럼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만들기 간편해서 여기저기 만들어 놓고 많이 이용했다. 세종이 지금의 종로1가 혜정교 위와 종로3가 종묘 앞에 해시계를 만들어 공중 해시계로 사용하게 한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추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혼천시계'
조선시대에는 해시계와 물시계는 물론, 추와 톱니바퀴와 같은 기계장치를 이용해 만든 '혼천시계'도 만들어 졌는데, 자격루 처럼 자동으로 시간도 알려주고 톱니바퀴에 연결되어 있는 혼천의는 해와 달, 그리고 행성들의 움직임을 아려준다. 이런 기계장치를 이용한 천문시계는 최첨단의 과학 이었으며 지금도 이런 천문시계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의 혼천시계 밖에 없다.
조선시대에는 물시계, 해시계, 혼천시계, 등 많은 시계를 만들어 썼다. 단순히 중국의 문명을 이어 받는데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새로 개발한 것은 우리조상의 창의성과 자존심을 높게 세운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옛날의 시간
지금과 달리 옛날 우리 조상은 모든것을 10과 12로 나누는것을 좋아했다. 그것을 10간,12지라고 한다. 시간의 경우, 12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인 '12시'로 나누었다. 그래서 '자시',축시'...등으로 불렀다. 12시는 또 첫부분을 '초', 가운데를 '정'으로 나누었다.즉 한낮의 오시나 한밤중 자시에도 '자초','자정','오초','오정',등으로 불렀다. 매시는 8각으로 나누어 하루가 96각 이었다. '일각이여삼추(一刻如三秋):1각이 가을 세번 가는것 만큼 길게 느껴진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또 해가 질때부터 다음날 해가 뜰때까지를 5등분하여 5경으로 나눴다. 또 1경은 5점으로 나눴다. 겨울엔 길고 여름엔 짧을 것이다. 이렇게 나눈 시간을 북이나 징을 쳐서 알렸다.
밤11시~새벽1시(자시)
새벽1시~3시(축시)
새벽3시~5시(인시)
새벽5시~아침7시(묘시)
아침7시~9시(진시)
9시~오전11시(사시)
낮11시~오후1시(오시)
오후1시~3시(미시)
3시~5시(신시)
5시~저녁7시(유시)
저녁7시~밤9시(술시)
밤9시~11시(해시)
흘러가는 것으로는 해가 대표적이다. 아침에 동쪽에서 떠서 저녁에 서쪽으로 진다. 해의 움직임을 보면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용해 만든 시계가 해시계, 즉 '일구'또는 '일귀'이다. 또한 흐르는 것으로는 물이 있다. 물은 다루기도 쉽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는데 응용되었다. 이것이 물시계이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 '앙부일구'라는 해시계를, '자격루'라는 물시계를 만들어 사용했다. 18세기쯤에는 톱니바퀴를 이용해 일정한 속도로 기계가 돌아가게 하는 식의 원리를 이용해 만든 '혼천시계'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물시계 '자격루'
세종때의 과학자인 장영실이 처음 만들었다.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는 현존하지 않는다. 다만 덕수궁에 현존하는 것으로서 중종때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만원짜리 지폐에도 그려져있다.
자격루는 맨 위에 있는 물통에서 두번째 물통으로 물이 흘러들고, 다시 일정한 속도로 가늘고 긴 아래의 물통으로 흘러 들어간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정한 속도로 물통속의 나무 막대가 떠 오르고 정해진 자리에 올라가면 쇠구슬이 옆의 홈통으로 굴러 내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흘러 들어간 쇠구슬은 필요한 만큼 종이나 징, 북을 울리게 한다. 마치 지금의 알람 시계와 같이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다.
해시계 '앙부일구'
세종때 만들어진 4가지 해시계 중 대표적인 해시계가 '앙부일구(오목해시계)이다. 오목한 해시계의 한가운데에는 그림자를 만들어주는 바늘이 있고 북극을 가리키게 되어있다. 해시계는 위도에 따라 그림자의 길이가 달라서 사용하는 장소에 따라 맞추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사용한 것이라면 '북극출지(北極出地)37도20분'이라고 쓰여져 있다. 앙부일구에는 세로줄 12개와 가로줄 13개가 그어져 있다. 가로줄은 24절기를 표시한다. 해시계는 물시계 처럼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만들기 간편해서 여기저기 만들어 놓고 많이 이용했다. 세종이 지금의 종로1가 혜정교 위와 종로3가 종묘 앞에 해시계를 만들어 공중 해시계로 사용하게 한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추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혼천시계'
조선시대에는 해시계와 물시계는 물론, 추와 톱니바퀴와 같은 기계장치를 이용해 만든 '혼천시계'도 만들어 졌는데, 자격루 처럼 자동으로 시간도 알려주고 톱니바퀴에 연결되어 있는 혼천의는 해와 달, 그리고 행성들의 움직임을 아려준다. 이런 기계장치를 이용한 천문시계는 최첨단의 과학 이었으며 지금도 이런 천문시계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의 혼천시계 밖에 없다.
조선시대에는 물시계, 해시계, 혼천시계, 등 많은 시계를 만들어 썼다. 단순히 중국의 문명을 이어 받는데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새로 개발한 것은 우리조상의 창의성과 자존심을 높게 세운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옛날의 시간
지금과 달리 옛날 우리 조상은 모든것을 10과 12로 나누는것을 좋아했다. 그것을 10간,12지라고 한다. 시간의 경우, 12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인 '12시'로 나누었다. 그래서 '자시',축시'...등으로 불렀다. 12시는 또 첫부분을 '초', 가운데를 '정'으로 나누었다.즉 한낮의 오시나 한밤중 자시에도 '자초','자정','오초','오정',등으로 불렀다. 매시는 8각으로 나누어 하루가 96각 이었다. '일각이여삼추(一刻如三秋):1각이 가을 세번 가는것 만큼 길게 느껴진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또 해가 질때부터 다음날 해가 뜰때까지를 5등분하여 5경으로 나눴다. 또 1경은 5점으로 나눴다. 겨울엔 길고 여름엔 짧을 것이다. 이렇게 나눈 시간을 북이나 징을 쳐서 알렸다.
밤11시~새벽1시(자시)
새벽1시~3시(축시)
새벽3시~5시(인시)
새벽5시~아침7시(묘시)
아침7시~9시(진시)
9시~오전11시(사시)
낮11시~오후1시(오시)
오후1시~3시(미시)
3시~5시(신시)
5시~저녁7시(유시)
저녁7시~밤9시(술시)
밤9시~11시(해시)
출처 : 와치레플리카
글쓴이 : 크레이지아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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